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2007-05-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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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텍 사건 29일 후

어처구니없이 32명의 생명을 빼앗아간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이 일어난 지 오늘로 29일째이다.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크고 작은 총기 사건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전문가들은 문제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1999년 콜로라도 고등학교 총기사건의 범인이었던 에릭 헤리스와 딜런 클리볼드가 13명을 사살했을 때도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느슨한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었고, 폭력성이 가득한 천박한 대중문화 규제를 강화하자는 소리도 나왔고,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치는 것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소리도 들렸다.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 총기는 규제되어야 하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폭력성 게임 및 비디오 규제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며, 교육적인 차원에서 생명의 존엄성은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하나가 더 필요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는 ‘에릭’과 ‘딜런,’ 그리고 ‘조승희’를 향한 의식적인 어프로치와 의도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부정한 사회와 부유층을 향한 극단적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 찬 내용을 담은 비디오 테입에서 “너희는 오늘 일을 피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너희가 내 피를 흘리기로 결정했다”며 “때가 왔을 때 나는 감행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고 조승희 학생은 고백했다.
‘수 많은 기회…’
그가 이 땅에 태어나 엄마 품에 안겼을 때부터 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까?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여 부모에게 큰 기쁨이 되었을 그 순간도, 유치원에 들어간 그 날도, 미국에 이민 와서 초등학교 들어간 그 첫 날도, 영어 못한다고 놀림을 당하고 돌아온 그 날, 어느 한 사람이라도 ‘괜찮아, 한국말 잘 하잖아’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면….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책 읽다가 놀림을 받았을 때 ‘아주 잘 읽었어’라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다면…. 교회에 나왔을 때 어깨에 손을 얹고 누군가가 ‘조승희, 당신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면서 웃어주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온 사회가 사랑과 관심으로 그를 대해 주었다면….
‘에릭’과 ‘딜런,’ 그리고 ‘조승희.’ 이들은 무관심하고 냉정한 사회가 만들어 낸 ‘무섭고 외로운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요구된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는 내 아이만 잘 키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 아이들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
자녀들은 신이 허락한 우리의 미래다. ‘내 아이 키움’에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 키움’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미래는 ‘내 아이’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박 성 호 (LA온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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