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7-05-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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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 없는 악보

“장자는 자기 마누라가 죽었을 때, 북을 치고 노래했다. 그 분은 나의 아버지였는데, 이제, 내가 북 치고 노래할 때다. 그 분은 이미 생사를 초월한 해탈한 분이시다. 나도 살만큼 살았는데…”
얼마 전 타계한 한국의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1958년 독일 뮌헨 대학에서 그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룬 후, 그의 예술 인생은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남준은 그를 위해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의 임종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위와 같이 답합니다.
존 케이지(1912∼1992).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LA에서 출생한 세기의 전위 음악가입니다. 일정한 법칙이나 제한 속의 전통적 음악 기법에서 탈피하여, ‘작품’이라는 개념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우연성’의 개념을 정립하고, 예술과 삶을 통합한 ‘놀이 정신’을 실천한, 대표적 아방가르드 즉, 실험 음악의 대가입니다.
케이지가 만든 수많은 곡들 중에는 ‘4분33초’라는 제목의, 피아노를 위한 파격적인 작품이 있습니다.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4분33초가 지나면 피아노의 뚜껑을 닫고 퇴장해 버립니다. 그 4분33초의 시간 속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숨소리, 심장의 맥박 소리는 물론, 소리와 소리 사이, 그 침묵의 공간조차도 음악이 되게 만든, 말하자면 ‘음표 없는 악보’로 연주되는 곡입니다.
연주 현장에서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소리들이 결국 작품을 구성하면서, 이른바 ‘우연적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곡을 세상에서 연주하기는 가장 쉽고, 감상하기에는 가장 난해한 음악이라고들 합니다.
그는 음의 기하학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이성적인 구성과 형식으로부터, 그 질식할 것만 같은 메커니즘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극한 예술가에게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법이 법이다”라고 말합니다. 법이 없다고 하는 것은 법에 머물지 않는다. 법에 구속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막히거나 걸림이 없다는 뜻의 무애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무애는 파격을 전제로 합니다. 깨친 자의 파격은 격의 처절한 혈육화 이후에나, 비로써 얻어지는 고귀한 자유요, 또 다른 완성입니다. 따라서 흉내나 낸, 덜 떨어진 파격적 언행은 돌부리가 되어, 걸려 넘어지기가 십상입니다. 그래서 같은 돌도 걸려 넘어지면 돌부리요, 딛고 넘어가면 디딤돌이 된다고 합니다.
파격은 달리 말하면 해방이며, 해방은 자연으로의 회귀, 그것을 위한 디딤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 스스로 그러함. 장자는 “황새의 다리 길면 긴대로, 참새의 다리 짧으면 짧은 대로”라고 했습니다.
해서, 존 케이지가 궁구한 ‘음표 없는 악보’의 구극은, 결국, 선사들의 입을 타고 자주 오르내리는, 임운 무작이란 말과 같은 의미 일터.
대저! 짓지 말고 흐름에 맡길 지라! 자유여, 너를 위해!

박 재 욱 (LA관음사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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