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폰다는 이제야 처음으로 무명씨 애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조지아 역의 제인 폰다.
“내 인생 멋진 3막… 이제야 조화가 보여”
오늘 개봉되는 한가족 여인 3대의 코미디 드라마 ‘조지아의 규칙’(Georgia Rule-영화평 무비리뷰면)에서 엄격한 할머니 조지아로 나온 제인 폰다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 호텔서 있었다. 금발에 까만 드레스로 정장을 한 폰다는 69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고혹적이면서도 우아했다. 평소 에어로빅으로 단련한 몸이어서 그런지 갈비씨라고 부를만큼 날씬했는데 생긴 모습이 자기 아버지 헨리 폰다와 똑 닮았다.
지나온 모든 것은 예행연습… 젊음 동경 안해
할머니는 딸에게 못한 일 할수 있는 제2의 기회
70대들의 뜨겁고 에로틱한 영화 만들고 싶어
-영화에서 당신 손녀딸로 나온 린지 로핸에게 버릇이 나쁘다는 이유로 프리미어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건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린지는 기본적으로 착한 젊은 여자다. 그는 이제 나이 20세인 아이다. 그는 우리들처럼 뒤에서 밀어주고 또 성장을 도와주는 가족이라는 구조를 제대로 가져 보질 못했다. 게다가 린지는 12세 때부터 유명 인사가 되었다. 우리는 그를 동정하고 그를 위해 기도를 해 줄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서 린지가 연기를 기차게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당신도 영화에서처럼 딸과 손녀를 갖고 있는데 그들과의 관계는.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딸에게 하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제2회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의 각본을 좋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의 조지아처럼 축복과 가족 결집은 위기를 통해서 온다. 나는 조지아처럼 좋은 어머니가 되는 방법을 몰랐다. 모델이 없으면 그걸 알기가 힘든 일이다(제인의 어머니는 제인이 어렸을 때 자살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운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 딸도 이제는 나의 이런 노력을 알게 됐다.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유명 인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신과 12세 때 유명 인사가 된 린지와 무엇이 다른가.
▲내 아버지를 보라. 네브래스카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근면과 정직과 예의범절과 성실이라는 확고한 가치관을 가졌던 사람이다. 반면 나의 어머니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난 20세에 들어서면서야 유명해졌다. 12세 때 유명해진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린지는 가치관을 제대로 가르쳐 줄 가족이 없다. 난 늘 그를 위해 기도한다.
-제인의 규칙은 무엇인가.
▲첫째 시간을 지킬 것. 난 늘 약속시간보다 5분 전에 온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 것. 셋째 거짓말 하지 말 것. 넷째 남에게 나쁘게 굴지 말 것. 다섯째 못된 사람은 반격하지 말고 피할 것. 여섯째 용서할 것. 일곱째 당신 잘못에 책임을 질 것.
-과거 당신은 매우 흥미 있는 남자들을 알고 사랑했는데 당신은 요즘은 남자의 어떤 면을 보고 관계를 맺는가.
▲난 애인이 있다. 내가 남자에게서 바라는 것은 그가 자신의 애정의 대상을 아낄 줄 아는 수용력이다. 내 애인은 당신들이 모르는 사람이다. 마침내 난 무명씨와 함께 있게 됐다. 그는 나를 아낄 줄 아는 정말로 좋은 남자다.
-당신은 페미니스트로 알려졌는데 이 단어가 종종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케케묵은 소리다. 내가 죽기 전에 만들고 싶은 영화는 뜨겁고 에로틱한 관계를 갖는 70이 넘은 사람들 얘기다.
-이 영화는 당신의 스크린에로의 본격적 귀환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당신의 찬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새 역이 많이 제공되는가.
▲난 12월에 70세가 된다. 그렇게 많은 각본이 주어지진 않는다. 제공되는 역이 대부분 완고하고 뚱한 여인역인데 난 그런 역은 싫다. ‘조지아의 규칙’에 나온 이유 중 하나도 조지아가 쾌활하고 영화에 유머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연 배우가 젊은 스타라는 것도 손해될 것이 없었다. 나를 전적으로 새로운 관객에게 소개할 기회이니까 말이다.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직업을 가졌건 여자에게 있어 나이 먹는다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배우는 압력을 받는 직업이어서 더 어렵다. 미국은 프랑스와 달리 젊음을 숭배하는 나라다. 나는 이런 사조에 대해 저항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내 젊은 시절은 그렇게 행복하질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대단한 미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과거를 바라보며 젊은 시절과 미를 동경하지는 않는다. 난 지금이 더 행복하다. 난 회고록에서 내 삶을 3막으로 나눠 썼다. 3막은 60세부터 시작하는데 난 그 걸 시작이라고 명명했다. 그 때까지의 모든 것이 예행연습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야 모든 것이 모여져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내 얼굴과 몸에 주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난 섹스를 할 때면 머리맡에 촛불을 켜 놓는다. 해변에서 섹스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몇 안 되는 변화의 하나다.
-어떻게 해서 종교를 갖게 되었는가.
▲난 무신론자로 키워졌다. 그런데 내가 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을 때 내 속에 어떤 성스러운 혼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 것이 내 육체 속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한 부분이 내 내면 저 뒤로 깊숙이 이동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이것이 신이구나 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참된 기독교 신자에로의 여정 초입에 있다.
-신앙이 없는 다른 여성들에게 무엇을 얘기해 주고 싶은가.
▲전도할 생각은 없다. 요즘은 너무 흔히 자기가 믿는 것을 남에게 요구한다. 내가 본보기가 됨으로써 남을 가르치고자 한다. 우리는 결코 완전할 수가 없다. 자기가 충분히 좋다 생각하면 그 걸로 족한 것이다. 난 여자들에게 성형수술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얘기 해주고 싶다. 주름살을 그대로 노출하려고 한다. 어쩌다 성형수술의 유혹을 느낄 때면 캐서린 헵번을 생각하곤 한다. 세상의 모든 성형수술을 다 받아도 가슴 속에서 진실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면 시체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당신은 할리웃을 떠났다가 오래간만에 돌아왔는데 그 동안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옛날에는 한 영화가 개봉하면 손님을 몇 주간은 기다렸고 젊은 배우들도 시간을 두고 팬들의 추종을 개발했는데 요즘은 개봉 첫 주말에 흥행이 안 되면 영화와 배우가 모두 쫓겨나는 세태다.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이 영화는 시간을 두고 손님을 모으는 영화라는 사실이다. 여러분들은 이 영화가 오래 견디리라 생각하는가.
-가장 하고 싶은 역과 나쁜 역은 무엇인가.
▲배우는 감정 이입에 바탕을 둔 직업이다. 우리는 타인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기대되는 직업인들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보는 우리 대통령과 달리 회색의 뉘앙스를 보는 사람들이다. 나쁜 점은 너무나 외모에 강조를 둔다는 것이다. 그건 나이 먹을수록 더 힘든 일이다.
-당신은 베트남전 때의 ‘하노이 제인’이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최근에서야 반이라크전의 뜻을 표명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나서서 정부로 하여금 사람들의 관심을 반전운동으로부터 내게로 돌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여자 또 나서네’라는 말로 반전운동의 소리를 약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몇 달 전 워싱턴의 반전시위에 참가한 것은 침묵을 지키기엔 이제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옛날에 반 베트남전 시위에 참가했을 때 난 내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왔었다. 그런데 이번 시위에 그 어린 딸이 어머니가 돼 자신의 어린 딸을 데리고 참가한 것을 보고 가슴이 너무 쓰라렸다. 과거의 재현이다. 왜 우리는 배우지를 못하는가. 거짓말과 오만과 무지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과거 당신의 영화 중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클루트’(창녀역으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줄리아’와 ‘나인 투 화이브’ 그리고 ‘맨 발로 공원을’과 ‘차이나신드롬‘이다. 그리고 TV 영화로 내가 에미상을 받은 ‘인형 만드는 여인’을 매우 좋아한다.
-일 안 할 때는 무얼 하는가.
▲뉴멕시코의 내 목장엘 혼자 찾아간다. 난 나의 영적 휴식처인 그 곳에서 승마와 낚시를 즐긴다. 그리고 명상하고 독서하고 공부하고 저술한다. 이번 여름 나 혼자 그렇게 보낼 것 같다. 난 대도시보다 중서부의 작은 도시를 더 좋아하지만 방금 뉴욕에서 내 보이프렌드와 사흘을 함께 보냈다. 내 나이에 보이프렌드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뭐라고 부르지. 내 어른 남자친구, 내 파트너, 내 연인, 내 사내, 내 중요한 다른 사람.
-당신이 어렸을 때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가 나온 ‘분노의 포도’다. 난 어릴 때 말괄량이어서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다. 그리고 집도 시내에서 떨어진 샌타모니카 산 언덕에 있어서 우리 가족은 극장엘 자주 가지 않았다.
-다음 책은.
▲내 인생의 멋진 제3막에 관해서 쓸 예정이다. 그리고 10대와 그 이전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와 섹스와 사춘기에 관한 책 세 권을 쓰고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