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2007-05-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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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오월에…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해마다 어김없이 운동회가 열리던 오월의 교정에서 목청껏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오월은 푸르구나/우리들은 자란다/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심심치 않게 끼니를 거르고, 옷 한 벌을 사면 누더기가 될 때까지 꿰매 입어야 했던 시절…, 5월5일 어린이날만큼은 분명히 우리들의 날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목이 쉬도록 응원을 하고, 뜀박질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삶의 고단함이 얼굴 가득 묻어나던 아버님도, 시장에서 단 돈 10원을 깎기 위해 상인들과 실랑이를 벌이셨던 어머님도 그날만큼은 넉넉한 웃음으로 자장면을 사주시곤 하셨습니다. 그 자장면은 내게 있어 행복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어린이날 노래 중 첫 소절이 기억 나지 않아 후렴 부분만을 반복해서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너무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아픔들이 몇 십년의 세월을 찰나 지간에 건너 와 가슴 한 귀퉁이에 자리잡는 것을 느낍니다.
시인 노천명님은 ‘푸른 오월’이라는 시를 통해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녹색의 푸름이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고, 찬연한 햇빛이 상점 유리창에 부딪혀 눈부신 빛의 조각으로 화해 쏟아지는 오월은 어린이날 노래, 운동회, 자장면 곱빼기의 기억조차도 아픔보다는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동화 속 삽화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아내게 합니다. 그러나 오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우리의 삶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모자람이 없고, 끼니 걱정 대신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고, 허리 한 치수를 줄이기 위한 사치스러운 배고픔마저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여유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도 어두운 새벽에, 학교에 가는 대신 물을 길어 오기 위해 강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탄자니아의 아이들, 마라톤 선수가 되면 가난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맨발로 먼지 나는 산길을 달리는 에티오피아의 아이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연필 대신 총을 들고 전장에서 보초를 서는 아이들, 에이즈로 죽어 가는 엄마 옆에서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 그들에게 오월은 계절의 여왕일 수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얼마 전 그랬듯이 말입니다.
올해는 그들이 오월의 푸름을, 눈부심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오월이기를 소망하며, 전 세계 192개 국가가 동의하고 참가한 유엔아동권리헌장을 되뇌어 봅니다.
①인종, 종교, 태생 또는 성별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②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영적 및 사회적으로 발달하기 위한 기회를 가질 권리 ③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 ④적절한 영양, 주거, 의료 등의 혜택을 누릴 권리 ⑤심신장애 어린이는 특별한 치료와 교육 및 보살핌을 받을 권리 ⑥애정과 도덕적 물질적 보장이 있는 환경 아래서 양육될 권리 ⑦의무교육을 받을 권리 ⑧놀이와 여가 시간을 가질 권리 ⑨전쟁이나 재난으로부터 제일 먼저 보호받고 구조될 권리 ⑩학대, 방임, 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⑪인간 상호간 우정, 평화 및 형제애 정신으로 양육될 권리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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