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맘에 안드는 부모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2007-05-07 (월)
크게 작게
아이가 잘못해도 야단 안치고 놔둘땐
부모보다 아이에게 직접 이야기해야

우리는 항상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과만 사귀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소유 지향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존재 지향적인 삶을 사는 사람과도 만나게 되고, 시류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과도 접하게 되며 세파와는 상관없이 표표히 중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과도 마주치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이 키만큼 부모의 눈높이도 자라게 되는데 주위에서 접하는 아이 친구들의 부모나 또래 부모들과 함께 어울리고 접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 서로 보지 않으면 늘 보고 싶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 개조’가 필요하다고 느낄 만큼 공격적이거나 지나치게 경쟁적이거나 성가시게 구는 사람과도 만나게 된다. 이런 황당한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다른 아이 깎아내리고
자기 아이 자랑만 할땐
칭찬해주고 빠져나가라


■지나치게 경쟁적인 부모
“게임에 휩쓸리지 말라”고 펜실베니아 대학의 찰스 두이어 박사는 조언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 자체를 게임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아이도 잘 하지만 자신의 아이는 항상 더 잘 하고 있으며 상대의 아이는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무대에만 서면 얼어붙지만 자기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관중을 사로잡는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는 것. 또 조금 친해지면 대학 입학할 때 SAT 점수가 몇 점이었는지 부모의 학점까지 캐묻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다고 그는 경고하고 있다.
이런 부모를 만나면 상대 아이의 장점을 한껏 치켜세워 주면서 슬쩍 대화에서 빠지는 것이 지혜이다.
“댁의 아이가 자라면 항상 파파라치가 따라다닐 겁니다. 지금부터 저렇게 재능과 끼가 만개하고 있으니…”라는 식으로. 이런 칭찬을 계속 듣다보면 상대방은 자신이 무게있게 다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떠벌이식 경쟁을 자제하게 된다고.

■매사를 꿰뚫고 있는 고수
“요즘 시대에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 엄마가 어디 있냐, 나가서 일 해야지…”라고 말문을 연 다음 프리스쿨 등록은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하고, 모유는 몇 도의 각도로 물려서 몇 분간 하루 몇 번을 먹여야 한다는 등 매사에 훈수를 두는 엄마들이 있다. 이런 사람이 지나치면 나중에 그 집 며느리는 임상 심리학자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황을 몰고 갈 수 있는 요주의 인물이다.
이런‘고수’들에게 경험 없는 젊은 엄마들은 상담 차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기 쉽다. “젖을 먹여도 아이는 계속 배고파하고 젖꼭지는 부어오르고 해서 모유를 중단하고 우유로 대체했다”고. 이럴 때 고수들은 모유의 장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시도해 볼 것을 종용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은 상대의 입장이나 경험, 의견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말이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이럴 땐 긍정과 부정 그리고 긍정으로 끝맺음을 하라는 조언이다. “충고는 고마워요. 모유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요. 그러나 내 경우는 효력이 없어 의사의 조언을 따르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내친 상대를 품기 위해 “부모가 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지요? 당신도 그렇게 느끼지요?”라고 마무리한다.

■해이한 부모
상대 아이와 내 아이는 잘 어울려 논다. 그러나 내 규칙이 무너져 물살에 떠내려간다. 아이가 내 집보다 그 집에 가서만 놀려고 한다. 그 집에 가면 내 집에선 허락되지 않는 소다도 마시고 M등급 비디오도 볼 수 있으므로.
이럴 경우는 판단하지 말고 설명해야 한다. 내 집 규칙은 이렇고 난 그 규칙을 아이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할 때 상대의 규칙이 나쁘다는 식으로 몰고 가면 당하기 쉽다. “내 규칙이 어때서?” 또는 “그렇게 까다롭고 복잡하게 아이를 키워서 뭣하게?”라고 되받으면 서로 눈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말이 거칠어지기 쉽다. 내 규칙을 설명했는데도 상대방의 변화가 없으면 선택은 두 가지다. 내 집을 좀 더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어서 아이들을 내 집에서 더 많이 놀게 하든지 아니면 내 아이에게 그 아이와의 놀이는 학교에 한한다고 말한 뒤 방과 후의 플레이데이트는 중단하는 것이다.

■무기력한 부모
아이를 야단칠 줄 모른다. 플레이데이트 때 자신의 아이가 상대의 내 아이를 때려도 못 본 척하고 공원에서 연못의 오리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사인이 분명이 붙어있는 데도 아이들이 연못에 먹이를 던지는 것을 방임한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기는 하겠지만 아이의 바른 안내자 역할은 포기하고 있는 경우다.
이럴 땐 부모의 방임적인 태도를 지적하기보다는 아이와 직접 상대한다. 연못가로 가서 무릎을 굽히고 아이들의 눈을 쳐다보면서 “연못 안에 크래커를 던지면 오리가 그걸 먹고 배탈이 난단다. 그리고 저기에 먹이를 주지 말라고 경고까지 붙여져 있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여러 차례 이런 식으로 행동했는데도 상대방 부모가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결국 교제를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부모
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인형 쇼를 보기 위해 자신의 아이만 잘 보기 위해 일어서서 보는 것을 막지 않는 부모는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소아적인 심리의 부모이다. 이런 무례는 당장 시정해 주고 싶지만 이쪽에서 무례하게 나가면 저쪽에서도 무례함을 정당화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성내기 전에 우선 속삭이라는 것이 전문가 조언이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아이 뒤에 내 아이가 있거든요. 당신의 아이가 일어서서 보면 내 아이의 시야가 가려져 안 보여요. 다른 아이들처럼 좀 앉혀서 보게 하면 안 될까요?”라고 공손하게 운을 뗀다. 그래도 시정이 안 되면 “내 아이도 일어서서 보고 싶지만 그 뒤 아이를 위해 그럴 수 없잖아요. 도서관 규칙이 앉아서 보게 되어 있다고 사서가 그러던데요”라고 말해 본다. 그래도 안 되면 내 아이를 다른 곳에 앉히던지 도서관 사서를 불러 개입을 요청한다.

■무신경한 부모
플레이데이트마다 늦게 나타나고 거실 커피 테이블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고 그 기저귀를 부엌 쓰레기통에 집어 던진다. 무례함보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신중함이나 사려 깊음과는 거리가 먼 경우이다.
이때는 단호함과 유머가 함께 동원돼야 한다. “음식 올려놓는 커피 테이블에서 기저귀를 갈다니!”라며 어이없어 하기보다는 살짝 웃으면서 “여기 기저귀를 갈 만한 체인징 테이블이 있어요”라면서 마치 상대가 체인징 테이블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저지른 실수처럼 연출하는 것이다.
또 플레이데이트 때 늦으면 “늦게 오면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우리 아이는 2시간 충분히 놀고 싶어 하는데…”라는 식으로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말한다.

<정석창 객원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