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 혼 - 외로움의 끝자락

2007-05-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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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내 마음이 촉촉이 젖어가면서 미국 시애틀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난다.
그곳 날씨와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한데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커피 마실 틈도 없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
“안녕하세요? 김영란씨! 오래 전부터 팬이에요. 정말 반갑습니다.” 나이는 40대 중반쯤. 교양 있고 아주 단아한 외모. TV 화면을 통해 친숙해 있던 탓일까? 그녀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울먹이며 과거 얘기를 털어놓는다.
“남편은 고위직 공무원이었고 안정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는데 남편의 외도가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지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 죽고 싶을 정도였어요.
결국에 이혼했고 철저히 혼자 살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몇 년을 남자와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생이 밋밋하면서 외로워지더니 남자 생각이 나는 겁니다.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며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그러다 우연히 오게 됐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스워 보이지만 이런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우리 회사의 회원들 대부분이 이런 외로움의 끝자락에서 우리를 찾는 경향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 한번의 불행을 잉태할 수 있는 함정이 되곤 한다.
같은 한 끼 식사라도 제때 먹는 사람과 오랜 굶주림 끝에 먹는 사람이 느끼는 맛의 차이는 당연히 틀린 법 아니겠는가.
이성과의 만남이나 사랑의 속성도 흡사 이것과 비슷한 것이다.
마음의 여유 없이 외로움의 끝자락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에 앞서 신중하기 어려운 법이며 그래서 다시 또 자신과 잘 맞지 않은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
이번에는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재혼이 아니겠는가. 그러려면 처음부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신을 급하게 만들지 말고 여유롭고 편안하게 누군가와 시작할 수 있는 상태에서 만남이 시작되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는 실패해서는 안 되는 당신. 그리고 성공과 실패는 철저히 당신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사람 속에서 열심히 어울려 살자. 혼자의 몸인데 연애도 좀 하면 어떠한가. 못하는 게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성에 목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편안하고 여유롭게 누군가의 만남과 재혼을 생각하기를 빌어본다.

김영란 <탤런트·행복출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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