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엄마, 사고 치다

2007-05-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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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우지직”
승욱이의 서머캠프 4주간 중에 마지막 하루를 남겨둔 오후, 난 다이아몬드바에서 터스틴까지 하루 두번 승욱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 오고 또 파트타임으로 밤 11시까지 일을 하며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 일에 몸을 너무 혹사시키는 가운데 드디어 졸음운전으로 로컬에서 신호대기 중에 앞차를 들이받았다. 얼마나 졸았는지 앞차를 들이받고도 금방 잠을 깨지 못할 정도였으면 위험천만인 순간이었던 거다.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으니 앞차 운전자가 뒷목을 부여잡고 차에서 내려 내차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사건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난 일단 차에서 내려 괜찮으냐고 물어보고 다른 차들에 방해되지 않게 차를 갓길로 세웠다. 승욱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10분이나 넘어서 내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난 우선 서로의 면허증과 보험증을 제시하자고 말을 했다. 그 말에 상대방은 어딘가 전화를 걸고 알 수 없는 스패니시로 떠들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면허증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난 5분을 더 기다린 후에 아무래도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했다. 상대방은 지금 와이프가 여기로 오고 있다고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신분증 달라는데 뭘 기다려?’
난 더 이상 기다려 줄 수가 없어서 아이 학교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날 따라오라고 했고 그 사람이 순순히 그러자고 해서 난 승욱이 학교로 가게 되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지난 5년간 한 번도 아이를 늦게 찾아가지 않은 나를 선생님들이 걱정하며 주차장 입구에 승욱이를 데리고 나와 서 있었다. 내 차가 들어오니 선생님들이 일제히 내 차로 걸어온다.
난 사고가 있어서 좀 늦었다고 하고 나를 따라 온 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들이 바로 “그 운전자 무면허 운전자 아니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 3대가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헉? 난 분명 차 한대를 들이받았는데 왠 차 3대?
혹시나 내가 뺑소니를 칠까봐 식구들을 다 불렀던 거다. 상대방 차 3대에서 내린 사람의 숫자와 나와 학교에 남아 있는 선생님들의 숫자가 딱 맞는 것이 대열 또한 이열 횡대로 내차 옆으로 다들 서 있다.
무슨 결투신청을 하는 듯 45도 각도로 서로를 주시하며 각 팀 대표로 사건의 전말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들이받은 차에 탄 운전자는 면허가 일시 정지된 사람, 그리고 난 그 사람의 차를 들이받은 사람. 과연 누가 잘못을 한 걸까? 선생님들은 무조건 경찰을 불러서 해결하자고 했다.
상대방 쪽 식구들이 그것만큼은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고 난 도대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승욱이는 내가 자기를 데리러 왔는데 차에 타지도 않고 계속 주차장에 서 있으니 차 타고 집에 가자고 내 손을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난리다. 급기야 승욱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뜨거운 아스팔트에 누워 뒹군다. ‘정신없어 죽겠는데 왜 너까지 이러냐 승욱아.’
상대방 운전자가 은근히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차 값 하고 본인의 치료비 조금만 주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경찰을 부른다고 전화를 들었다. 선생님들은 절대 돈을 주면 안 된다고 저 사람은 법을 어기고 무면허로 운전을 했으니 법으로 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법? 그 말에 상대방 운전자 가족이 나보고 법이 먼저냐 사람 다친 것이 먼저냐 라고 물었다.
과연 승욱이 엄마는 뭐라 말했을까. 음. 물론 사람 다친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그 다음 제가 어찌 처리했는지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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