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5-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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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는 대로 거두리라”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은 만고불변의 자연법칙이다. 인간의 삶도 이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사울왕과 다윗의 이야기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이면서도, 목숨을 걸고 자기를 도와준 다윗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시기심에 불탄 사울왕은 여러번 다윗을 죽이려는 악한 생각을 갖고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착한 다윗은 선하신 하느님이 손수 뽑아 세우신 왕을 죽일 수는 없다는 바른 마음으로 왕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도 악을 행하지 않았다. 결국 악한 사울왕은 목숨을 잃고, 선을 행한 다윗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 속의 ‘실제’ 이 이야기는 사울왕과 다윗왕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뛰어넘어, 인류 역사에 살아 움직이는 삶의 철칙을 말해주고 있다. 이 철칙 안에서 스승을 배반했던 유다스는 멸망했고, 죽음을 각오하고 ‘그분’을 따랐던 베드로는 영생을 얻게 됐다.
이 세상을 지으신 하느님의 변함없는 이 ‘창조법칙’은 영원한 것이어서, 세월의 흐름도 이를 역행할 수 없다. 600만 유대인을 학살했던 히틀러는 자살했고, 30년 이상 감옥 생활 속에서도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웠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태통령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아 노년을 축복 속에 보내고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변할 수 없는 법칙 안에서 개인의 삶도, 인류의 역사도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의심없이 이에 따라서 말이다.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조차 이 창조법칙을 존중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을 잡으러 온 대사제들과 지배층이 보낸 군졸 앞에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군졸의 귀를 잘라버린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칼을 쓰면 칼로 망하게 되는 세상 이치를 왜 그리 모르느냐” 하시며 최후 순간까지 올바른 길로 제자들을 이끄셨다.
인류 역사에서 칼을 쓰는 자는 반드시 칼로 망하고, 거짓과 악을 일삼는 자는 거짓과 악의 앙갚음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경우를 우리는 눈이 아프도록 봤다. 세상을 내신 하느님의 창조법칙은 이처럼 확실하고 명백하다. 분명 선을 행하면 복을 받게 되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우주만물을 내신 하느님의 창조법칙이다.
이것은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과 똑같은 틀림없는 자연법칙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변함없는 의지요 뜻이다. 그렇기에 콩을 심고 콩을 수확하면서 농부는 그 안에서 ‘살아’ 계시는 하느님과, 그 창조주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계심을 분명히 알게 된다.
누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기대한다면, 그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심을 모르거나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악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면서도 그분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팥을 심어놓고 콩이 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아침이 오면 밤이 가고, 빛이 오면 어둠이 가는 자연법칙처럼, 선하신 하느님과 악은 결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온 세상과 우주를 내신 그분의 창조법칙에 따라 사는 것만이 영원한 생명은 물론이고, 현세의 지상 생활마저 평화와 기쁨의 축복이 되는 단 한 가지 길이 아닐까?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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