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2007-05-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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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호루라기

박혜성 (목사·아주사퍼시픽 대학 교수)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

학회 참석차 시카고에 일주일 머물면서 한 가정을 만났다. 그 집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에서 경영하던 비즈니스를 다 잃고 지금은 시카고의 한 도매상에서 막일을 하고 있다. 헤어질 때 그 집 가장에게 기도 제목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급한 신분 문제 해결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위한 기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분의 기도 요청은 전혀 뜻밖이었다.
“목사님, 저희는 작년에 분노와 절망감을 끌어안고 무척이나 힘든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작년 겨울에 주님은 우리 가정의 상처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교만히 살던 잘못된 저희 모습을 깊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희가 사업을 하면서 현금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많은지라 정직하게 한다고 해도 바르게 세금을 납부하지 못했던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제 사업을 해도 100% 정직하게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아니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희가 지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곳 삶 가운데서 무엇이 저희 가정을 향한 주님의 뜻인가를 더욱 선명히 깨닫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기 원하는 그 분의 기도 제목에서 고통의 풀무를 통해 단련되어 나온 정금과 같이 순수한 영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이 아닐까? 주님은 결코 우리가 어떤 대단한 일을 하는데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 인격이 얼마만큼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느냐에 관심이 있으시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듯이 믿음의 삶에도 선후가 있다.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 먼저이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뜻을 따라 살며 거룩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나중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러한 믿음 생활의 앞뒤를 뒤바꾸어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앞뒤가 바뀌면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와 기대를 하게 된다. 그 결과 개인은 위선적인 삶으로 바른 믿음의 생활이 아닌 종교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생명력 없는 종교적인 삶은 기복적이거나 현세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과 쉽게 접목돼 복음의 본질을 떠난 삶으로 귀결된다.
오늘날 기독교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는 많은 기독교인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아니면 개인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양 착각하는 데 있다.
물론 하나님은 백성이 가난하거나 병들어서 고통 가운데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영혼이 잘 됨같이 모든 일에도 잘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주님의 최우선 관심은 영혼이 잘 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참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 우리 인격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내가 어떤 인격의 사람으로 변화되느냐 하는 문제로 돌려야 한다. 주님의 관심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LA에도 거룩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우리 마음에 있는 온갖 찌꺼기, 교회와 이민사회에 있는 이기주의, 성공 지상주의, 기복주의의 혼탁한 불순물을 말끔히 날려보내는 날을 소망하자. 그 때에 우리는 함께 투명한 영성의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빛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박혜성 (목사·아주사퍼시픽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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