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각하는 삶

2007-04-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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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자기훈련

사람은 이성과 감성, 지성을 두루 지닌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이 세 요소가 이상적으로 배합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거나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게 된다. 우리에게는 감정을 조절 못해 아무 데서나 시끄럽게 떠들고 쉽게 남과 싸우며 자기감정을 분출해대는 고약한 성질들이 있다. 또 우리 문화는 이를 방관하거나 수용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감정이 치솟다 보면 화를 내게 되는데 이러면 논의 자체가 어려워진다.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분석해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이야기 서두를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우습지 않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리고는 그 뒤를 이어갈 내용을 찾지 못한다.
원인은 훈련부족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한 인터넷 언론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호주는 초등학교에서 5분 말하기를 실시하며 토론 문화를 가르친다. 5분 동안 학생들은 주제나 방법에 제한 없이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몇 년을 반복하는 동안 학생들은 자기표현에 필요한 논리적 사고를 갖게 되고 사람들 앞에 서는데 대한 두려움도 없어진다. 정황과 상황,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훈련이다.
그에 반해 한국의 토론은 아직 몸에 맞지 않는 겉옷이다. 토론을 마치 만장일치를 이끌어내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본인과 생각이 다르면 상대방 의견의 타당성을 인정치 않는다. 흑백논리에 바탕을 둔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음성적 자기표현이 한국 토론문화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통섭’(consilience-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저서 제목으로 지식의 통합을 의미한다)의 새 개념으로 지식과 사고의 통합을 통해 새 지식을 창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껏 편하게 안주하던 자기합리화의 일원식 사고방식은 벗어나야 한다.
인터넷 네티즌들을 예를 들어보자.
이들의 적극적 토론은 한국 시민문화 형성에 큰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훈련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본명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댓글을 통해 알지도 못하고 비방만 일삼는다면 ‘산을 움직일 수 있는’건전한 시민정신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곳 미국서 사는 우리 동포들도 마찬가지다. 발전된 토론 문화를 받아들여 남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기의견의 기승전결을 확실히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과 사고를 논리 정연히 표출해 내어 적합한 때와 장소를 가려 상대방을 설득 또는 이해시키는 습관은 크게는 타운 내에서 한층 발전된 시민문화를 토착화시킬 수 있고 작게는 요즘처럼 자주 접하는 우발적인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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