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들여다보기

2007-04-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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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뿌리

얼마 전에 일어났던 버지니아 공대 대량 살인사건은 아직도 우리 마음을 무겁고 아프게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아픔 못지 않게 끔직한 범죄를 한 그 가해자에게도 동정과 쓰라린 연민의 마음이 드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기에 그런 엄청난 폭력이 쏟아져 나온 것일까?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의 폭력과 학대 행위는 분노의 마음에 그 뿌리가 있다. 마음에 분노가 많이 차 있는 사람일수록 별일 아닌 일에도 화를 내며, 자주 폭발시킨다.
그리고 주위 사람에게 억압적인 행동이나 신체적 폭력, 또는 정신적 학대행위로 자신 안에 쌓여 있는 분노를 발산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화를 내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자신을 화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에 대한 바른 이해가 결여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상황이 나를 화나게 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화를 내거나 안내거나 하는 통제와 선택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기 때문 이다.
결국, 마음에 분노가 많이 쌓여 있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않으려 해도, 일단 자그마한 방아쇠 (trigger)가 당겨지면 터져나오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여 화를 내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분노는 여러 감정중 한 가지인 ‘화’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는 ‘앵거’(anger)란 표현되지 못하고 억압된 모든 부정적 감정을 말한다. 결국 분노의 뿌리는 표현되지 못한 채 마음 깊이 쌓여진, 남몰래 당했던 억울하고 화났던 감정, 슬프고 답답한 감정,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 수치스럽고 당황했던 감정과 죄책감 등 모든 감정의 덩어리를 의미한다.
이 억압된 부정적 감정들은 엄청난 파괴적인 힘을 가진 정신 에너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가 표현될 땐 폭력과 학대의 행위로 나타나지는 것이다.
버지니아 대학 사건의 가해자를 생각해 보면 어디서 그런 피괴적인 분노가 왔는지 이해할수 있다.
클래스메이트가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적이 없는, 수많은 세월동안 누구와도 함께 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고립의 삶을 살아온 그의 삶은 바로 엄청난 분노를 쌓아온 삶이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다. 육체의 빵보다 더 중요한 정신의 빵인 사랑과 관심과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인간관계가 결핍될 때 사람의 정신은 병이 든다.
자신의 마음을 서로 나누며 공감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인정받을 때 사람의 정신은 건강해진다.
하지만 고립된 섬처럼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들이 표현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히면 정신은 뒤틀리기 시작하며, 열등과 망상, 집착과 강박과 함께 분노가 쌓여가는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자녀의 정신건강에 깊은 자성과 자각을 해야 할 때이다.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의 모든 감정의 경험들에 공감해 주고 맞장구를 치며 메아리를 쳐줄 때 아이들의 마음에 갇혀있던 부정적 에너지가 방출되며 정신을 정화시킨다.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자.
그리고 이미 마음 문이 닫힌아이뿐 아니라 분노가 많은 부모 자신도 더 깊은 분노의 고리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전문가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213)500-0838

서경화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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