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지니아텍 참사 13일 ‘미래야, 우리가 간다 길을 비켜라’

2007-04-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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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대학생 5인이 말하는 현주소

옅은 안개가 걷히고 났을 때의 서늘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상쾌함이라고 할까. 그 복잡다단한 감정이 표류하는 청춘들의 고민은 진지했지만 유쾌했다. 지나간 참담한 과거에 대한 비판과 분석이 따랐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낙관 역시 이들 몫이었다. 버지니아텍 총격사건 이후 한인 대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심정일까. 한인사회에서 한국에서 연일 한인 이민가정과 이민사회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어려운 타향살이, 먹고사느라 바빠, 언어 차이로 아이들과 맘 터놓는 소통 어려워’라는 헤드라인이 뽑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고개를 끄덕일까 아니면 냉소할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들은 도대체 1세 부모들에게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 걸까.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직접 이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지난 16일 석양이 뉘엿거리는 USC 캠퍼스에서 한인 대학생 5명과 만났다. 궁금함을 지나쳐 사무치게 얻고 싶은 화두를 틀어잡은 ‘땡중’마냥 그들과 마주 앉았다. 그동안 그 어떤 질문에도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한 ‘땡중’에게 그들은 정신 번쩍 드는 죽비소리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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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문제 학생이 저지른 끔찍한 사고일 뿐
한인 대학생들 색안경 끼고 안봐 크게 위축안돼

■사건 이후 한인이기 때문에 외적·내적 혼돈을 겪진 않았는지?

버지니아텍 총격사건의 범인이 한인이라는 데 충격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워낙에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쳐 당연히 충격이 컸지만 범인이 한인이라는 것에 유난스레 한인 대학생들이 집착하지는 않는다고 전한다.
“그저 지금까지 밝혀졌듯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한 대학생의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고예요. 주류언론 혹은 미국인들이 거듭 밝히듯 캠퍼스 참사는 참혹했지만 범인의 인종구분이 무엇이었든 느꼈을 비극이 아니겠어요?”(다니엘)
또 각 캠퍼스에서도 한인이 범인이라고 해서 한인 대학생들을 색안경 끼고 보지도 않고, 한인 대학생들 역시 위축되지도 않는다고 이들은 전한다.

■한인 이민가정 특수성이 이번 사건과 관련 있다는데 동의하나?
이민 와 영어 한마디 못하고 먹고사느라 바빠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민 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생업전선에서 전전긍긍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과는 언어차, 문화차가 벌어져 있어 제대로 대화가 없는 가정이 된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고민이 무엇인지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 꽤 많은 이민가정의 풍경이고 이러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의 혹은 참극의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요즘 나오고 있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일각의 의견에 대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제 어머니 역시 영어가 자유롭지 못했지만 학교 행사에 열심히 쫓아다녔고 되든 안 되든 학교에서도 딸의 수업태도나 교사의 어드바이스를 듣기 위해 노력했어요. 물론 당시엔 좀 창피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면 어머니의 그 열성이 저를 키운 게 아닌가 싶어요”(보람)

“고기 직접 낚아주지 말고 부모는 잡는 법 가르쳐야”

부모 영향권 못 벗어나면 온실 속 화초격
성적으로만 평가 대학서 목표상실 많아
이민사회 특수성 오히려 가족간 친밀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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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받은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을 사회와 가정에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한인 대학생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환한게 웃고 있다>

“제 아버지 역시 보통의 한인 아버지처럼 말 수가 많진 않지만 바쁜 와중에도 같은 남자로서 이해하려 노력하셨고 가능한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언제나 아버지가 내 편이라고 여겼고 그건 삶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앤드류)
이들은 이민사회라는 특수성이 오히려 한인 부모들에게 늘 교육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한국식 권위주의를 버리고 자녀들과 친밀하게 하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물론 학업 성적만을 강조하고 학교 성적으로 자녀를 평가하다 보면 대학에 와 목표를 상실하는 친구들도 많다는 것이 이들의 전언이다.
자녀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들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순간인 대학 신입생 시절 목표상실에 혼란마저 겪어 결국 대학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그런 한인 대학생들도 의외로 많다고 이들은 말했다.


■한인 남성들은 기질상 주류사회 적극적 편입 힘들다?

최근 한인 여성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언론과 패션, 영화나 미디어 등 최근 한인 여성들의 진출은 비약적이다 못해 웬만해서 뉴스거리가 될 수 없을 만큼 놀랍다. 그뿐인가. 학생회장이다 SAT 만점 뉴스에 각종 경시대회 수상자 명단의 상당수 또한 한인 소녀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일각에선 한인 1세 남성들의 권위적이고 과묵한 성격 등이 빨리 주류사회에 편입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주류사회 역시 소수계 여성들에 대해 보다 더 관대한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휴, 그건 아니라고 봐요. 솔직히 한인 2세 남자들은 부모들에게 암묵적으로라도 한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고 자라잖아요. 그러다보니 현실에서 당장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보다는 안정적인 의사나 변호가 되죠. 상대적으로 여자들은 그런데서 자유로우니까. 영화도 찍고 옷도 만들고 그러다 보면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그런 거 아닐까요. 2세 남자들이 무능해서가 절대 아니거든요. (일동 웃음)”(다니엘)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들은 ‘가족’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과 연대의식도 함께 갖고 있었다. 또 이민 와 고생한 부모와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이들은 부채의식과 안쓰러움도 함께 일고 있었다.

■1세 부모들에 대한 이들의 시선
 
“어려서부터 부모들로부터 자녀들 때문에 이민 왔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2세들 역시 그를 잘 알고 있죠. 말 안 통하는 이곳에서 고생하는 것도 옆에서 생생히 지켜봤고요. 덕분에 부모에게는 늘 빚진 심정이고 미안한 마음이 많을 수밖에 없죠.”(보람)
“그러다보니 자식들만은 이 땅에서 안정적으로 살게 하기 위해 의사나 변호사 만들려고 한다는 것도 알고요. 학업 성적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자녀를 너무 감싸고돌아 온실 속 화초를 만드는 경우도 봅니다.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 보다 더 자유롭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 하는 데도 말입니다.”(샘)
“그러나 많은 한인 부모들은 고정관념처럼 강압적이거나 무조건적이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대단히 자유롭고 건강하게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을 봐도 말이죠.”(지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 하이틴 부모들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좋은 학교에 보낸다고 고학년이 돼 갑자기 이사해서 좋은 학군에 편입하는 건 그리 바람직한 것 같지 않아요. 낯선 환경과 친구들은 물론 오히려 생활수준 차에서 오는 위화감까지 들면 학교에서 겉돌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면 학업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니까요”(다니엘)
“그러나 좋은 학군은 좋은 학업환경을 조성하긴 해요. 그래서 마약이나 갱과 같은 범죄에 편입될 가능성이 적은 건 사실이고요. 물론 그렇다고 공부만 강조해선 정말 이상해질 수 있죠. 고교시절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보람)
“맞아요. 고교시절 대학입학이 세상에 전부인양 공부만 하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목표를 상실하는 친구들을 많이 봐요. 그래서 신입생 때부터 공부 안하고 방황하는 이들이 많죠.”(지나)
“결국 하이틴 시절 부모가 자녀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고기를 낚아주는 것이 아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앤드류)

■ 대학생 5인은?

▲다니엘 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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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닌슐라 하이스쿨(팔로스버디스· 2004년 졸업)
▷샌타모니카 칼리지 정치학 전공

▲백보람(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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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시티 하이스쿨 졸업(웨스트 LA·2002년 졸업)
▷UC 리버사이드 회계학 전공
▷남가주 한인총대학생회 회장

▲앤드류 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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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니 하이스쿨(세리토스·2004년 졸업)
▷USC 회계학 전공  

▲지나 박(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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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년 하이스쿨(애나하임힐스·2004년 졸업)
▷칼스테이트 롱비치 간호학 전공

▲샘 홍(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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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니 하이스쿨(세리토스·2003년 졸업)
▷USC 생물학 전공

글 이주현 기자, 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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