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7-04-27 (금)
크게 작게
콧구멍 없는 소

그 날 법회는 당연히 아수라장이 되고야 말았다. 그 명망이 온 나라에 자자하신 대선사께서 법문을 내리신다는 소문이 나가고, 그것도 선사의 속가 모친을 모시는 특별한 보은의 법회라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법회 당일에는 서산 읍내는 물론이고, 근동의 수많은 대중들까지도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법회 시작 전, 대법당은 벌써,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이 대중들로 꽉 차 버렸고, 더 넓은 법당의 앞마당까지도 넘쳐난 대중들로 가득했다. 모두 목을 빼고 선사님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선사께서 그 당당하고 거침없는 위풍을 드러내신다.
주장자를 법상에 눕히시고, 가부좌를 틀어 법석에 정좌하신 선사께서는 눈을 반쯤 내리시더니, 이내, 깊은 선정에 드신다. 그러고는 앉은 채로 돌부처가 되신 듯, 요지부동이시다. 대중들은 너도나도 마른 침을 삼키느라 목젖을 오르내리며, 이제나저제나 사자후를 토하실까 애를 졸이는 눈치다.
이윽고 대중들의 지루한 몸뚱이가 슬슬 보채기 시작할 무렵, 그제야, 선사께서는 겨우 선정에서 나오신다. 곧 바로, 그 육중한 몸을 슬그머니 일으키시는데, 어쩐지 수상하고 미심쩍은 낌새가 엿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엉뚱하게도, 선사께서는 걸치신 가사장삼을 하나씩 벗어 던지기 시작하시는 게 아닌가. 의아한 일부 대중들은 설마 설마 하면서도, 선사의 몸짓에 조마조마한 눈길을 보태고 있는데, 법당 안은 이미 심상찮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설마 했던 대중들의 기대와는 달리, 기어코 사태는 벌어지고 만다. 차고 있던 마지막 남은 고의마저 선사의 몸에서 빠져나가자, 일시에 대중들의 넋은 날아가고 흩어지며 참담한 비명이 터지면서, 뒤로 나뒹구는 사람, 뛰쳐나가는 사람들로, 법당 안은 마치 소금 맞은 미꾸라지처럼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경악의 소용돌이, 그 와중을 알몸뚱이 그대로, 터벅터벅 법석에서 걸어 내려온 선사께서는, 앞줄에 계신 모친의 코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선사의 모친은 아들의 공노할 만행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치받는 분노를 감당할 길 없어,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잠시 소란을 잠재운다.
“소승의 눈에는 어머님이, 제가 발가벗은 젖먹이 때나 지금이나, 소승의 어머님이신 그대로 입니다. 허나, 어머님께서는 이 아들이, 이제는 여느 남정네로만 보이시는 모양입니다.”
깨달음의 자유를 저울질해 보고자 끊임없이 시도한, 파격적이고 기상천외한 선사의 숱한 무애 행들 중에서, 다만, 한 자락을 뽑아내어 펼쳐 보았습니다.
구한말, 스러져간 불교 선종의 혁명가로서, 웅혼한 선적 삶을 치열하게 살다간, ‘콧구멍 없는 소’ 경허!
실로 그 분은 번뇌, 망상, 형식과 명분의 코뚜레에 꿰여서 휘둘리지 않기 위해, 평생을 아예,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 몸을 벗으시며 주신, 그 분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마음 달 외로이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다. 빛과 경계마저 잊으니, 다시 이것은 무엇인가.”

박 재 욱 (LA관음사 법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