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각장애인 위한 연주 설레요”

2007-04-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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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센터 공연갖는 필그림 오케스트라의 실력파 틴에이저 3명

만남에는 설렘이 함께 한다. 새로운 만남일수록 설렘은 강도가 커진다.
로라 하(16), 율 김(15), 스테파니 박(15)에게 28일은 마음 설레는 만남이 예정된 날이다. 필그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비전시각장애인센터와 함께 여는 연주회가 만남의 장소다.
로라와 스테파니는 바이얼리니스트, 율은 하피스트다. 모두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한 적이 있는 실력파다.
로라는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서머 뮤직 페스티벌에서 솔로이스트로 협연했다. 율은 7세 때 하프를 시작해 올해 하프 내셔널 컴피티션에 참가할 계획이다. 5세에 바이얼린을 시작한 스테파니는 PSYO 등과 협연했다.
로라는 모자르트의 k218 제1악장을, 스테파니는 멘델스존의 바이얼린 협주곡 Op. 64 제1악장을 연주한다. 율은 찬송가를 들려준다.
이번 연주회 포스터 사진을 찍은 뒤 세 틴에이저는 연습에 더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평소 금요일 오후 3∼7시 오케스트라 전체 연습이 끝난 뒤 한 시간 더 남아 솜씨를 갈고 있다. 홍선열 오케스트라 단장은 “마음이 안 따르면 못 할텐데, 스스로 열심히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로라는 “세상 속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 데도 여러 사정 때문에 자주 하기 힘든데, 이번이 너무 좋은 기회”라며 “작은 무대라도 최선을 다하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로라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삼촌이 들리지는 않아도 제 연주를 끝까지 듣고 있는 걸 보면 너무 가슴이 뭉클하다”며 “시각장애인 앞에서는 첫 공연이라 더 기대가 된다”고 말한다.
무거운 하프를 갖고 다녀야 하는 율은 연주회를 하려면 차가 두 대나 움직여야 한다. 그래도 “시각 장애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고 말한다.
홍 단장이 12∼18세 청소년 35명과 함께 시각장애인 앞에 서는 이유는 경험 때문이다. 지난해 비전센터 개소식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악보를 못 보는 탓에 찬양곡 한 곡을 한 시간 넘게 연습하는 것을 봤다. 그래도 ‘그리스도의 계절’을 그렇게 뜨겁게 부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청소년에게도 꼭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스테파니는 “제가 받은 것을 모두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는데, 장애인을 보니 그런 마음이 바뀌었다”며 “어떤 일이 제게 일어나도 항상 행복하게 생각하기로 결심했어요”라고 말한다.
율은 “연주회가 끝난 뒤 연주자나 청중 모두 행복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며 “비전센터에서 불러주시면 언제라도 연주를 하겠다”고 말했다.
2005년 창단된 필그림 오케스트라는 개척교회, 양로원, 노숙자를 위한 작은 연주회를 주로 열어왔다. 청중이 찾아오는 연주회가 아니라, 스스로 청중을 찾아가는 연주회를 하고 있다.
홍 단장은 “오케스트라 공연을 통해 좁은 공간 문제로 고민하는 비전센터가 더 넓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며 “오케스트라가 아이들을 바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한편 이날 연주회에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지만 USC 음악대에 합격한 피아니스트 노유진도 특별 연주를 한다. 장소는 2727 N. Durfee Ave., El Monte. 문의 (626)864-8734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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