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 혼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

2007-04-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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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있는 미국에 드나들면서 경험하고 들여다보게 되는 미국의 재혼가정. 그들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매우 ‘쿨’하고 그 ‘쿨’은 합리적인 ‘쿨’이다.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새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가 우리보다 한결 현실적인 것이다.
원래 모든 것이 우리보다 오픈되어 있는데다 오래 전부터 이혼이 일상사 되어 있기에 가능하겠지만 그들에게는 초혼 가정이나 재혼 가정의 경계 구분이 전혀 없다. 또한 이혼 후 가족 왕래도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유롭다. “오, 헨린 와 있었군. 오늘 아이 데리고 가는 날이지? 내 아내는 어딨지?” “목욕 중이야. 보고 가려고 나도 기다리는 중이야”
이렇게 ‘쿨’하기도 하고 ‘페어’하기도 한 서구의 이혼문화에 비해 우리는 이혼 후 원수가 되어 안 보고 살거나 자식과의 만남도 일방적으로 끊어 부모 자식을 생이별 시키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이렇게 어른들만의 일방적인 강요가 재혼 후까지도 이어지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게 새 엄마나 새 아빠라며 한 가족으로 지낼 것을 자연시 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할 수 있다.
재혼한 부모들도 흔히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쌓이곤 한다. 그래 새 배우자가 전 배우자와 다르게 자식을 대하거나 혹은 자식들이 새 배우자를 친부모처럼 따르지 않으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얼마나 우습고도 무서운 생각이란 말인가.
내 속으로 난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이고 친부모 말도 잘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게 애들인데 어떻게 내 자식도 아닌데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으며 친부모처럼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그러기 위해 서로 노력은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영원히 그렇게 안 돼도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본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만 좀 더 편안한 새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재혼가정에서 자식문제가 불거지면 많은 이들이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끝내는 또다시 이혼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데 그 중 많은 부분은 우리 어른들의 욕심에서 시작되는 것을 종종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재혼가정을 숨기고 싶은 데서 시작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 재혼은 우리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당신만 아니고 너도 나도 모두 겪을 수 있는 일반사임을 잊지 말고 부디 욕심 부리지 말고 엄마 아빠가 아니라도 좋으니 그저 사이좋게만 지낼 수 있으면 된다는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을 주문해 본다. (213)381-7799

김영란
<탤런트·행복출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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