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2007-04-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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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마르지 않는 날에 (하)


새벽이 오기까지 왜 이리 시간이 더디 가는지 언니와 난 그저 벽만 바라보고 하염없는 눈물만 쏟아내고 있다. ‘이럴 순 없는 건데, 아. 이게 꿈이었으면.’ 의사가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다른 가족이 오는 중이니?” “지금 전화하려고 목사님하고 가족들이 올 때까지 우리 여기 있어도 되지?” 젊은 의사도 우리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늦게까지라도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사람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건 그저 한발자국 차이인 것 같다. 내가 지금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고 조금 일찍 죽고 조금 더 사는 것밖에 차이가 없는 건데 왜 이리 사는것에 목숨을 걸고 아등바등 하는지 모르겠다. 죽으면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지고 갈 수도 이고 갈 수도 없는데 말이다.
여러 가지 생각과 형부에 대한 나만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데 형부 형제분들이 병원에 도착하시고, 목사님도 도착하셨다.
이런 분위기, 이런 상황, 이런 감정. 아버지의 임종 후 딱 1년 5개월만에 다시 그렇게 서있다. 형부의 얼굴을 보면서 다들 오열하며 조용히 임종예배를 보았다.
아침이 되니 번뜩 조카들 생각이 난다. “언니, 애들 때문에 내가 먼저 집에 가 있을께.” “민아야, 애들한테 형부얘기 하지마. 언니가 가서 애들 붙잡고 잘 설명해 줘야 할 것 같아. 애들이 너무 놀랄 것 같아.”
나머지 일들은 사돈들에게 맡기고 난 조카들이 있는 언니 집으로 향했다. “얘들아, 이모 왔어. 일어나서 이모집에 가자. 조이스, 조셉, 오늘 학교 안 가도 돼. 이모 집으로 엄마가 온다니까 가서 기다리자.”
집으로 가면서 애들에게 아침을 사 주니 작은조카는 먹는데 큰조카는 통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 왠지 다른 날과 틀린 나의 행동에 여자 애라 예민한 큰조카가 눈치를 챘는지 통 웃지도 않고 묻는 말에 짧게 네, 아니오만 대답을 한다. 그에 반면 작은조카는 학교를 안 간다는 기쁨에 연신 입가에 웃음이 배시시 묻어난다. 집에 오니 엄마는 얼마나 우셨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계신다. 조카들을 보면서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난 눈짓을 하며 “엄마, 애들한테 말하지 말래 언니가.”
병원에서 언니가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언니를 엄마가 붙잡고 “어구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아구 이걸 어쩌나 이거 앞으로 불쌍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 언니를 이리 쓰다듬고 저리 쓰다듬으며 눈물을 쏟으신다. 엄마와 언니가 붙잡고 우는 사이 큰조카가 슬그머니 자리를 일어나더니 화장실에 가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 조이스가 우는 것 같아. 가서 애 좀 달래줘.”
“조이스, 아침 일찍 아빠가 천국으로 갔어. 많이 놀랐지? 울지마, 여기 엄마도 있고 이모도 있고 할머니도 있잖아. 그리고 아빠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갔는지 알지? 어젯밤에도 너희들 숙제하는 거 다 봐주고 너희 자는 것도 다 봐줬잖아. 울지마. 아빠는 이곳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간 거야. 할아버지 간 곳으로 간거야. 알지? 눈물 닦고 오늘은 학교 가지 말고 엄마랑 여기 있자.”
하나님, 우리의 눈물을 아시죠? 주님의 병에 담겨진 우리의 눈물을 계수하고 계시는 걸 압니다. 기억해 주세요. 이 아픈 눈물을, 이 서러운 눈물을, 이 이유도 알 수 없는 눈물을, 뼈저린 눈물을 말입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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