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리가 준 선물

2007-03-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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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라보기>
요즘 나는 일주일에 닷새를 아이를 데리러 아이 학교까지 걸어서 갔다 걸어서 오고 있다. 그렇게 된 계기는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포스닥을 시작하게 되자 우리에게 차 한 대는 누군가 양보를 해야만 하는 선택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남편은 나에게 차를 양보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남편이 새로운 곳에 자전거로 출 퇴근하기에는 조금의 위험성과, 강렬한 햇빛, 그리고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그렇듯 결정은 내가 내렸다. 내가 걸어 다닌다. 정확히 나와 내 아이가 걸어 다닌다.
그렇게 시작 된 걸어서 다니기는 내게 많은 즐거움과 발가락의 물집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집에서 아이 학교까지 아주 빠른 걸음으로 정확히 30분이 소요된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을 하며 걸어가면 45분이 걸린다.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름대로 시간을 재어 보니 15분만 일찍 나가면 걷는 즐거움에 생각하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다는 행복한 결론을 얻었다.
그렇게 갈 때 45분, 아이와 함께 걸어오면 약 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았다. 총 1시간45분이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이 시간을 선택했다.
물론 발가락에 걸치는 슬리퍼를 신고 아이를 데리러 간 날에는 발가락 사이가 물집이 생기고, 멋 낸다고 구두를 신고 갔다 온 날에는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생겼고, 급한 마음에 뒤가 트인 단화를 신고 갔다 온 날은 평생 처음으로 발뒤꿈치에 물집이 커다랗게 잡혔다.
그렇게 처음 한 주는 내 발에 여기 저기 물집 투성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내 발가락을 보여주며 “나는 발이 약한가 봐” 하며 웃으니 남편은 자기가 더 아픈 표정으로 내게 자신이 자전거로 다닐 테니 나보고 차를 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물집이 달린 발보다 걸으며 생각하는 나에게 허락 된 45분과 아이와 함께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며 깔깔대고 웃으며 걸어오는 약 한 시간의 행복을 위하여 물집을 못 본 척하기로 결정내렸다. “나의 발에는 물집이 없다. 나는 물집을 못 보았다.”
나는 걸으며 생각한다. 지금 내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이 시간과 이 바람, 이 햇살, 그리고 이 모습은 바로 조금 후면 아주 그립고, 멋진 추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남편에게 나는 양보할 수 없었다. 남편은 자신을 걱정하여 내가 차를 양보한 줄 알지만 실제로 나는 내 추억과 내 기쁨을 양보할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나는 많은 것을 본다. 요즘 흐드러지게 피고 있는 벚꽃도 눈부신 햇살도 거리에 각자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도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이 가방을 내가 메고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도 들려주고, 함께 노래도 부르며 그렇게 세상을 천천히 걸어온다.
정말 행복하다. 두 다리가 준 행복을 제대로 음미하며 네 다리가 웃으며 오늘도 걷는다. 벌써 3시15분이다.
어서 내 아이 입에 들어가 시원하게 녹을 간식을 몇 개 가방에 넣어 나가야 한다. 나는 마치 내 아이 나이가 된 양 오늘도 간식이 든 가방을 빙글빙글 돌리며 걸어갈 것이다. 사람이 안 볼 때. 오늘은 두꺼운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가야겠다.

김정연 <화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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