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커버스토리 ‘역사야 놀자’

2007-03-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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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타고 ‘18~19세기 롱비치’여행, 하루만에…

랜초 로스 세리토스
히스토릭 사이트

초기 캘리포니아 자료 최다
4.7에이커의 역사 박물관


이조시대 삶이 어떠했는가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한국에서 성장한 대다수의 한인 성인들은 언어, 식생활, 생활 수단에서부터 사회 구조와 중요한 역사적 사건 몇 가지를 몇 분 안에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캘리포니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거주했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막상 답변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남가주에서 수년, 수십년을 살아도 이 곳 역사를 특별히 알거나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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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부터 1929년, 랜초 로스 세리토스는 오랫동안 목장을 차지했던 소와 양을 차츰 줄이고, 콩, 보리, 알팔파 등의 작물이 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낙농장으로 변신했다>

그런 이민자들에게 역사적 유적이나 사적을 방문하는 일은 뜻밖의 신선한 경험이다. 시간과 인종의 차이를 넘어서, 잠시 다른 세계를 다녀오는 듯한 색다른 감흥을 받게 되는 것. 더욱이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지식과 체험을 공유하는 유익한 이벤트이고, 이색적인 소일거리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롱비치와 인근 지역의 역사가 시작된 랜초 로스 세리토스 히스토릭 사이트(Rancho Los Cerritos Historic Site)는 봄이 성큼 다가선 주말 나들이 장소로 더없이 적합한 곳이다.

총 대지 4.7에이커에 어도비(adobe) 벽돌로 만들어진 몬트레이 스타일의 이층 건물과 그 주위를 에워싼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모든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리서치 도서관이 합쳐져 국립, 주립, 그리고 롱비치 시에서 역사적 지구로 공식 지정한 박물관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부터 시작해서 18~19세기 스페인 식민 정착시대와 멕시코 통치시대를 거쳐 미국의 영토로 자리 잡기 시작한 초기 캘리포니아 관련 자료 및 컬렉션이 가장 많이 보관된 곳 중 하나로 손꼽힌다.
다른 일반 박물관과 차별화 되는 점은 실제 인물들이 살던 공간을 그대로 보존하여 공개하기 때문에 방문자들이 마치 19세기로 돌아간 듯한 기분으로 그 시대의 삶을 엿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 한 세기 반의 역사를 품고 꿋꿋이 지탱해 온 히스토릭 사이트에서 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주말, 온가족이 타임머신에 올라 타보면 어떨까? 랜초 로스 세리토스만이 가지고 있는 유서 깊은 특징과 주요 행사를 다음과 같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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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부터 1881년까지 랜초 로스 세리토스를 소유했던 빅스비 형제와 사촌들은 북가주에서 성공한 목양업을 이곳에서도 시작하여 대대적인 양 농장을 이루었다>

<역사적 배경>
아메리칸 인디언부터 스페인 식민지 거쳐 롱비치에 기증, 1955년 박물관으로

랜초 로스 세리토스는 역사가 깊은 만큼 시대별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가장 최초로 이 곳에 인간이 거주한 흔적은 기원전 2000~5000년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추정되며, 그 후 서기 500~1200년께 50~100여개의 인디언 마을이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84년부터 스페인 식민지 정착이 시작되었고, 스페인 군인 마누엘 니에토가 30만에이커의 땅을 상으로 받아 소유하다가 1804년 자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중 ‘작은 언덕의 목장’이란 의미를 가진 랜초 로스 세리토스는 니에토의 딸 마누엘라 코타에게 주어졌고, 그녀가 숨진 1843년에 매서추세츠 출신 존 템플에게 매각되었다.
템플은 20여년간 가족과 함께 이 곳에 거주하면서 대대적인 소목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1860년대에 들어 가뭄과 홍수가 거듭되면서 수만마리의 소를 잃고, 1866년에 마침내 플린트 빅스비사(Flint, Bixby & Co.)에 목장을 넘기고 만다. 당시 매매 가격은 2만달러.
빅스비 가족은 빅스비 삼형제와 사촌들로서, 북가주에서 성공한 목양업을 남가주에서 재현하여 더욱 성공한 사업가들이다.
그 중 조댐 빅스비가 독립하여 랜초 로스 세리토스에서 목양업을 벌였고, 최고 3만마리의 양을 기르며 이곳에서 일곱 명의 아이들과 수십년을 살았지만 1870년대부터 목양업이 어려워지자 낙농장으로 변신하여 운영되다가 마침내 1900년 전후로 목장은 거의 버려진 상태에 빠진다.
수십년이 흐른 1930년, 르웰린 빅스비의 아들이 랜초를 복구하기로 하고 건축가 랄프 코넬을 고용하여 건물 및 정원을 재건축하지만, 그가 사망한 뒤 자녀들이 랜초 전체를 롱비치 시에 넘겼고, 1955년부터 박물관으로 개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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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초 로스 세리토스 박물관의 제일 큰 자랑거리는 19세기 목장의 삶을 그대로 보존한 랜치 하우스다. 1870년대 이곳에 살았던 빅스비 가족의 아메리칸 빅토리아식 가구를 유지하고 있는 방의 정경>

실제인물이 살던 공간 그대로 보존

<랜초 로스 세리토스의 특징>

■어도비 벽돌집
1844년, 남가주 최고 부자로 알려졌던 목장 재벌 존 템플에 의해 건설된 주택이다. 어도비는 모래, 모래 진흙, 밀짚 등의 천연 재료를 혼합하여 말린 벽돌을 말하는데, 남가주와 같이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해 주는 장점 때문에 많이 사용되었던 건축양식이다.
현재 LA 인근에 남아있는 어도비 집들은 대부분 역사적 건물로 지정되어, 지역 정부, 또는 역사적 유물 보존 단체들에서 관리하고 있다.
랜초 로스 세리토스의 어도비 집은 1844년부터 1866년까지 템플 가족이 거주했고, 그 뒤로 1866년부터 1955년까지 빅스비 가족이 거주하면서 지녔던 빅토리안 가구, 장식, 소품들을 다수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더욱 의미 있는 공간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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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초등학교 및 중학교들에서는 랜초 로스 세리토스를 견학장으로 삼아 19세기 미 서부지역의 삶과 캘리포니아 역사를 공부하고 체험한다>

■컬렉션
랜초에 들어서면서 눈에 띄는 거의 모든 물건이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구, 장식, 식기, 소품, 서적, 농기구 등에서부터 책상 서랍에서 나온 종이, 펜, 머리핀, 장신구, 장난감 등 사소한 개인적인 물건들까지 이곳을 거쳐 간 세월과 사람들의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박물관 전체에 보존된 사진만 1,100여점, 1830년부터 1930년 사이에 수공으로 만들었거나 대량 생산된 의복 및 직물 1,000점 등은 다른 역사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물건들.
또한 도서관에는 3,000여권의 캘리포니아 역사책을 비롯하여 랜초 관련 서류, 지도, 주택과 대지 문서, 청사진, 개인들의 일기, 편지, 저널 등이 리서치를 위해 보관돼있다.
도서관은 랜초가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시간에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도서나 자료를 빌려 나갈 수는 없다.

■정원
1840년대, 존 템플이 심어놓은 오리지널 과수원과 정원이 아직 남아있으며, 1930년 건축가 랄프 코넬(Ralph Cornell)이 개조하여 조경을 꾸민 멋진 가든이 3월 말부터 봄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보수된 워터 타워(Water Tower), 무쇠로 된 수지 단지(Tallow Pot) 등이 인상적이다. 오렌지, 레몬 등의 시트러스 과일이 주를 이루는 과수원 또한 봄이면 화사한 꽃이 피어나는데, 이곳에서 나는 유기농 과일로 만든 잼을 기프트 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든 투어는 3월부터 10월까지 매달 첫 일요일 오후 2시30분, 무료로 안내자의 설명과 함께 진행된다. 최소한 2주 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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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리버에서부터 태평양까지 2만7,000에이커의 땅을 소떼가 덮고 있었다는 1844~1866년 목장 시절, 카우보이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안내인이 보여주고 있다>

Rancho Los Cerritos Historic Site
-4600 Virginia Rd. Long Beach, CA 90807
-562-570-1755
-www.rancholoscerritos.org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1~5시에는 무료 입장.
-가이드 투어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1시, 2시, 3시, 4시에 있으며, 10명 이하 개별적인 투어는 특별히 예약을 할 필요가 없다.

<랜초 로스 세리토스 특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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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초 로스 세리토스 박물관과 롱비치 학군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어도비 시절(Adobe Era) 농가 재현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부 학생들은 19세기 복장으로 그 시대 삶을 경험하는 트레이닝 세션을 신청할 수 있다>

랜초 여름 콘서트 (Rancho Summer Concerts)
여름날 오후 한가로이 피크닉을 즐기면서 역사 속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6월28일 오후 6시부터 7시30분까지 랜초 가든에서 진행된다.
피크닉 입장은 5시부터 시작되므로, 콘서트가 열릴 때까지 1시간 남짓 정원과 저택을 돌아보거나 피크닉 식사를 미리 할 수 있다.
출연진은 6월 초부터 웹사이트나 전화로 문의하면 알 수 있다.

봄 축제 ‘초기 캘리포니아식’(Spring Festival: An Early California Celebration)
스페인 식민지 정착인들과 멕시코인 농부들에서부터 랜초에 목장업이 완전히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절까지, 초기 캘리포니아의 삶을 재구성하여 음악, 댄스와 함께 축제로 꾸미는 잔치.
크래프트 만들기, 카우보이식 로프 다루기를 비롯한 다수의 게임, 톨티아 만들기, 버터 만들기 등 실습 시간, 흥겨운 음악과 다양한 음식 등이 마련되어 아이들에게는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이다.
모든 안내인들이 커스튬을 입고 실감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5월20일 오후 12시30분부터 4시30분. 다른 랜초 행사와 달리 입장료가 있다. 성인 5달러, 어린이 3달러.

‘과거의 유령’ 역사 투어 (Ghosts from the Past: Living History Tours)
19세기 의상을 갖춰 입은 캐릭터들이 163년의 역사를 가진 어도비 벽돌집을 떠도는 유령들의 역할을 맡아 그 당시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1840년부터 1940년까지 랜초의 역사를 바탕으로 목장시대(Cattle Ranch Era), 목양업시대(Sheep Raising Era), 낙농장시대(Dairy Farm Era) 등으로 구분되어 있어, 각 시대별로 방문하여 견학할 수 있다.
4월29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매 30분마다 랜초 투어 그룹이 출발한다. 모든 캐릭터들은 배우가 아닌 박물관 관계자 및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어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진행된다. 입장은 무료.

고은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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