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2007-03-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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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승화된 희망의 학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 근교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는 유달리 산뜻하게 지어진 2층짜리 교실 건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벽면에는 익숙한 한글 이름이 음각된 ‘OOO Memorial School’이라는 현판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저는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이 학교에 들를 때마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 학교 건물은 7년 전인 2000년, 제가 한국 월드비전에서 활동할 당시, 한국 광주에 거주하시는 한 후원자께서 가슴 아픈 사연과 함께 보내온 후원금에 월드비전이 매칭펀드를 넣어 지은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사연인즉, 그 분의 아내가 분만을 하던 중 난산 끝에 수술을 했습니다. 병원 측의 작은 실수로 인해 아내와 태아가 모두 죽고, 위로금으로 3,000만원을 받았습니다.
너무 어이없는 현실에 몇 날을 넋을 놓고 있다가 정신을 추스르고 아내의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옷장 속에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어린이 사진이 붙어 있는 월드비전의 아동 결연 카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월드비전에 전화를 걸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풍족하지 못해 자신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한 명의 아동을 무려 3년 이상을 후원해 온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아내의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족들을 모아 놓고는 병원에서 받은 위로금 3,000만원은 아내의 생명 값이니 아내가 후원했던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죽은 아내의 뜻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학교가 완공되던 날, 그 분은 우리와 함께 그 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물론 그 학교 건물의 현판에 새겨진 것은 그 분의 돌아가신 아내의 이름입니다. 환호를 지르는 그 곳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 속에서 환히 빛나던 그 분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학교에서 저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다면, 제 아내도 천국에서 기뻐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예기치 못하는 슬픔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슬픔 속에서 아름다운 결정을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상을 살면서, 갖고 있는 것 중 아주 조금을 나눈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의 오래된 학교에는 언더우드 기념관, 스완슨 기념관 등 외국 선교사 이름이 붙은 건물들이 많습니다. 그 학교를 통해 수많은 한국의 지도자들이 배출되었고, 지금의 한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분들의 조건 없는 헌신이 동방의 작은 나라에 희망의 싹을 심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에티오피아의 그 학교에는 어린 새싹들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생소한 어떤 한국인이 평생 잊지 못할 슬픔을 간직한 채 보내준 후원금으로 만들어진 그 학교에서 그 나라의 문제들을 해결할 지도자들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나라에 그들의 사랑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이 세상은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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