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주현 기자의 ‘트렌드 따라 잡기’

2007-03-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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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기도 단계가 있다

정말 고루하고 케케묵은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옷은 일단 몸에 잘 맞아야 한다.
그래야만 활동이 편하고, 또 활동이 편해야만 그 옷을 즐겨 입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한 옷도 전체적인 사이즈나 특정 부분이 맞지 않으면 ‘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빠르고 편리한 것을 선호하는 세상, 오트 쿠튀르(최고급 맞춤 의상)보다 더 고급스러운 기성복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여전히 오트 쿠튀르를 고집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는 꼭 여성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몸에 꼭 맞는 옷이야말로 별로 특별한 디테일이나 디자인이랄 것도 없는 남성 수트에 더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컬러가 좋고, 디자인이 좋으면 뭐하는가. 자기 사이즈보다 한 사이즈 크게 입어 팬츠의 엉덩이 부분이 헐렁하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고, 양복 어깨가 너무 커 자기 어깨보다 1인치는 밑으로 내려온다면 이 수트나 팬츠가 제아무리 수천달러짜리 프리미엄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옷 잘 입는 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화려한 컬러나 디자인에 치중하기보다는 별로 티나지 않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스타일리시해 보이는 디테일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또 옷 잘 입는 남자나 여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들의 실루엣이다. 몸과 일치된 듯, 꼭 맞춰 입어 얄미울 정도로 딱 떨어지는 피팅이야 말로 가장 완벽한 패션이 아니겠는가.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 사라 제시카 파커와 같은 여자들은 물론 조니 뎁, 조인성, 이병헌 등 옷 잘 입는 연예인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끝내 주는’ 피팅이다. 특히 사라 제시카 파커와 이병헌은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짜리몽당’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것 역시 바로 이 물샐 틈 없는 피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잘 증명해 주는 한 가지 예. 한국의 한 유명 스타일리스트의 인터뷰 중 기자가 “왜 요즘 그렇게 멋을 내지 않으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녀가 들려준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옷을 많이 입어보고 입히다 보니 화려하고 남들 눈에 띄는 옷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드는 반면, 바짓단이 발목 어디에 오느냐나 벨트 고리의 모양 같은 부분에 대한 관심은 커진다고.
처음 옷차림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를 지나, 관심으로 인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시기를 지나고, 누가 봐도 ‘스타일리시하다’라는 느낌이 들도록 멋을 내는 시기마저 지나고 나니, 여간해선 남들은 눈치 채기 어려운 부분에 집착하게 되는 시기가 오더라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과연 어디쯤 와 있을까 생각해 본다.

HSPACE=5

<옷 잘 입는 스타를 이야기할 때 사라 제시카 파커를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미국 배우치고는 작은 16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피팅으로 결코 키가 작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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