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각하는 삶 ‘이기적 자원봉사’

2007-03-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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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란 말의 정의는 무보수로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서 자란 한인 1세들에게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미국에서 배울 만한 것이 있다면 단연 이곳의 ‘Volunteerism’ 문화일 것이다.
지금은 한국서도 자원봉사자가 많이 늘었고 나도 작년 가을 한국서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교육과 실질 체험 등으로 좀 더 제도화 되어져 있어 성인, 특히 노년층이 되면 여유시간을 자원봉사에 쓰게 된다.
2006년은 베이비부머 세대 중 첫 번째로 60세 노년층이 나온 해인데 베이비부머 노년층 세대가 갑자기 불어나자 이들의 사회 참여와 자원봉사를 감당할 능력이 있고 준비가 되어 있느냐, 또는 이들의 시민 참여에 따른 부수적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가 새로운 사회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노인학적, 사회학적 연구 가치로까지 부상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원봉사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어느 단체의 일원이 되어 금전과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고 어느 단체와 특정한 관계가 없이 단체가 하는 일에 힘을 빌려줄 수도 있겠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30년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민주주의 발달의 여러 가지 근간 요소 중에서 ‘Association’(단체)의 활동을 제일로 꼽았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를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가 존립되어져 결국 상충적이며 상이한 이견들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지역 사회 또는 나라가 갖게 되는 것이다. 단체를 통한 시민참여는 억지보다는 합의와 꾸준히 지속하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지금껏 이루어져 왔고 또한 그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것이 미국 사람들의 ‘Way of Life’(사는 방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인 지역사회도 단체는 타인종 사회와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세분화되어 있다. 종교단체, 직능-직업별 단체, 동향, 취미, 친목, 사회봉사 단체 등. 미디어를 통해 새로 생기는 단체를 볼 때마다, 놀랍고 과연 그럴 필요가 있으며 꼭 단체를 만들어야만 활동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더구나 이미 유사한 단체가 활동하고 있을 땐 더더구나 그렇다.
한인들은 이러한 수많은 단체에 소속되어 그 나름대로 노동(?)과 시간, 그리고 돈을 투자하고 있다. ‘자원봉사’라는 개념을 투영해 그러한 활동을 분석한다면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단체에 투자하는 것은 엄격한 의미의 ‘자원봉사’라고 하기에는 미달됨을 지적하고 싶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자원봉사일까? 이를테면 내가 속한 내 가정을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자원봉사인가? 내가 속한 교회, 성당, 절, 또한 사회 봉사단체의 이사직 등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이 자원봉사인가? 물론 보수가 없기 때문에 자원봉사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선택에 의해 나의 공동체를 위해 쓰는 시간들은 나의 의무와 책무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필자가 이러한 논지를 내세우는 이유는 많은 한인들은 나를 포함해 불특정 다수를 위해 자원봉사 하는 이들이 많지 않고 항상 ‘나의 단체’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나의 단체’의 안녕을 위해 남의 단체를 해하기도 하고 공명심에 바탕을 둔 이기적 봉사에 더 집중하기도 한다. 내가 속한 단체가 이기적 단체이지 않고 전체 지역사회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느냐에 관심을 둔다면 토크빌이 이야기한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알량하나마 기여할 수 있다.
또 금상첨화로 아무 관계도 없는 곳에서 이름 없이, 표시 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자원봉사자가 많아진다면 우리 한인사회도 자연스럽게 한 걸음 더 성숙한 지역사회가 되리라 여겨진다.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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