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감사한 것을 생각하세요’

2007-03-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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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승욱이의 서류를 하려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다. 거기다 수시로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아파트 렌트비도 집 값과 함께 동반 상승한 탓에 집 가까운 아파트부터 둘러보고 있지만 가격이 만만찮다. 열심히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나를 엄마가 아주 못마땅해 하시고 계시다.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기에. 너무 서글프다.’ 나도 서글픈 건 마찬가지지만 다 같이 고개 떨어뜨리고 서글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너도 생각을 해봐. 아버지 돌아가신지 몇 달이 됐다고 이렇게 갑자기 이사를 간다는 거야. 나에게도 안정이 필요해. 벌써부터 엄마 의견을 무시하고 너 마음대로 하는 거야? 아버지가 계셨으면 네가 나에게 이렇게 하진 않았을 거야. 어디 가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네가 나에게 이렇게 모질게 할 수 있는 거니?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난 입을 꾹 다물고 엄마가 하는 말만 듣고 있다. 가슴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올라오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무조건 밀고 나가야 한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엄마는 나에게 계속해서 섭섭함을 표현하신다. 그 어떤 말씀에도 꿈쩍하지 않는 내가 꼴 보기 싫으신지 말씀도 없이 집을 훌쩍 나갔다 오신다. 정말 단단히 화가 나신모양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속이 상하고 나는 나대로 마음이 답답하다.
거기다 큰아이도 유사 사춘기를 겪고 있는지 반항의 끝을 달리고 있다. 아이들을 매일 엄마에게 맡기고 저녁에 일을 나가니 엄마는 승욱이 보느라고 정신이 없으시고, 큰아이는 매일 TV만 보고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으니 산만할 때로 산만해져서 도저히 걷잡을 수가 없다.
괜히 큰아이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니 정말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다음날, 승욱이 소아과 검사를 위해 가정주치의를 만나러 갔다. 우리 가족을 전부 아시는 박 선생님이 제일 먼저 엄마의 안부를 물으신다. 아버지 병의 심각성을 최초로 발견하신 분이 박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을 모두 아는 분이시다. 승욱이 건강검진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승욱이는 둘째 치고 사는 것을 물어보신다. 덕분에 모두 평안하다고 인사치레로 말씀을 드리고 선생님이 만들어준 병원기록을 들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박 선생님이 부른다.
“승욱 엄마, 힘내세요. 오늘 유난히 힘들어 보이네요. 무슨 어려움이나 아픈데 있으면 언제든 저한테 오세요. 어머님도 드시는 약 필요하면 모시고 오세요. 제가 승욱이 엄마 가정을 잘 압니다. 그래도 승욱이 엄마, 승욱이 데리고 미국 오신 거 정말 잘하셨어요. 언제나 힘들 때 감사한 것을 생각하세요.”
감사한 것을 생각하세요… 라는 말에 갑자기 눈이 뜨거워진다. 감사할 수 없는 것보다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내가 그동안 이보다 더 힘든 일도 잘 견뎌왔던 내가 이렇게 약해 있다니… 엄마가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고 큰아이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또 승욱이의 모든 것이 버거운 것이 나는 약해지게 했다.
오늘 약해 있는 나에게 시편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싶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편 4절 말씀.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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