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알래스카 여행기 <상>

2007-03-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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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 프루도 베이와 데드 호스

미국의 모든 길이 끝나는 곳

미 대륙 최남단의 섬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에서 잉크를 쏟아 부은 것 같이 짙푸른 카리브해의 짠물에 발을 담그면서 언젠가는 미국 최북단의 차가운 바다 알래스카의 프루도 베이(Prudhoe Bay)를 찾아갈 것이라던 꿈을 23년이 흐른 인생 황혼에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은 시작할 때보다 끝마칠 때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동녘에 떠오르는 활기찬 아침 햇살도 아름답지만 서산 너머로 기울어지는 태양이 그려놓은 저녁노을은 더 아름답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70이 다된 나이에 미국의 모든 길이 끝난다는 프루도 베이에 도전하는 나를 스스로 아름답다고 자찬하면서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경비로 왕복 1만2,000여마일의 먼 여행길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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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의 오일 파이프라인이 시작되는 프루도 베이에는 영구 거주자가 없다. 모험심으로 찾아오는 여행객들도 푸대접을 받기 일쑤다. 사진 앞쪽이 필자>

LA 떠나 8일간 3,985마일 달려 알래스카에
영구 거주자 없는 데드호수는 “노동자의 지옥”

여행은 2006년 8월1일 시작해 24일에 마쳤다. 숙소는 우선 나의 2004년도 닛산 미니밴(Nissan Quest)으로 하기로 하고 뒤쪽 의자를 모두 접고 바닥에 두꺼운 이불과 담요를 깔고 전기밥솥과 아이스박스에 김치와 음료수를 채워 넣고, 샤워와 체력 유지를 위하여 도중에 유명한 온천들을 찾아서 지도에 표시하기를 마쳤다.
로즈미드시에 있는 집을 떠나 첫 밤을 쉬어갈 아이다호의 라바(Lava) 온천을 향하여 북으로 뻗은 15번 프리웨이의 아스팔트를 자동차 타이어는 힘차게 밀치면서 달렸다. 이렇게 시작한 멀 고 긴 여행은 몬태나주 수도 헬레나 근처의 캠핑 그라운드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하절의 별무리가 하늘 무대에서 합창하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국경을 넘고 캐나다 캘거리와 에드몬튼을 지나 끝없이 펼쳐지는 숲과 호수를 지나며 하이웨이를 달려 유콘(Yukon)의 주 수도 화이트호스(Whitehorse)에서 15마일 정도 떨어진 타키니(Takhini) 온천에 들러 피로를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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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동안 왕복 1만2,000여마일의 험한 길을 잘 달려준 미니밴>

다음날도 차를 재촉하여 캐나다 국경을 넘어서 알래스카의 대문 안에 들어섰다. ‘Welcome to Alaska’ 표시판 앞에 차를 세우고 자동차의 계기판을 들여다보니 집 떠난 후 8일 동안 3,985마일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겨울 기온이 영하 50도를 밑돈다는 캐나다 북쪽 유콘의 돌멩이와 진흙탕 길 그리고 빙하 옆을 무사히 달려준 자동차가 너무 고마워 차체에 키스를 하였다. 그러면서 70년 동안 1초도 멈추지 않고 뛰어준 나의 심장에 대해서도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알래스카에 들어서니 미국 땅이라 그런지 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에 잠시 땀을 식히고 차를 계속 북으로 몰아서 페어뱅스를 지나 그곳에서 51마일 거리에 있는 유명한 셰나(Chena) 노천온천에 들러 더운 물에 몸을 담그고 혹시 북극광을 보는 행운을 만날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8월인데도 북극권이 가까운 셰나 온천의 아침은 산들바람이 옷소매를 들추고 스며들어오는 한국의 초가을 날씨 같았다.
다음날 프루도 베이까지 뻗은 댈튼 하이웨이 입구에 있는 Weight Station에 들러 제복을 입은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백인에게 프루도 베이를 찾아가는 여행 계획을 말하면서 자문을 구했더니 자기는 페어뱅스에서 태어나서 평생 그 곳에서만 살았고 프루도 베이에는 가본 일이 없다면서 정신병자 대하듯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중간에 차가 고장 나거나 기름이 떨어지면 해결 방도가 없으니 각별히 유의하고 스페어타이어 셋 정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충고를 내뱉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댈튼 하이웨이 중간 지점 250마일 구간에는 마켓이나 개스 스테이션도 없다는 말을 내뱉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프루도 베이까지의 500여마일 낯선 길에 남길 나의 발자국은 과연 어떠한 것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페어뱅스에서 414마일 북쪽에 위치한 프루도 베이와 데드호스로 가는 댈튼 하이웨이의 5분의4는 진흙과 자갈길이며 30분만 달려도 차창에 진흙이 튀어서 백미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하지에는 24시간 해가 안지고 동지에는 24시간 밤이 계속된다는 Arctic Circle을 지나니 “240마일 내에 주유소도 마켓도 없다”는 표지가 길손의 마음을 더욱 외롭게 한다. 가끔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에 혹시나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하고 차를 샛길로 몰아 찾아가 보면 높다란 철조망 울타리가 나그네의 접근을 거절하는 파이프라인 중간 충전소였다.
실망한 나는 차를 돌려 세워놓고 집을 떠나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지났던 대륙의 광활한 사막 과 비옥한 농경지와 그림 같은 호수와 숲, 그리고 지금은 피곤한 길손의 잠시 쉬었다 가겠다는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철조망 울타리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멀고 긴 여행길에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은 툰드라(tundra)의 태고의 적막을 난폭하게 부수면서 유전지대에 장비와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트럭들이 난폭하게 걷어찬 자갈이 결국 내 차의 앞 유리에 금을 내놓고 말았다. 그리고 북극 순록의 뿔을 찾아 나선 사냥꾼들의 픽업트럭에는 무참하게 살해되어 잘라진 사슴의 뿔들이 잔인한 인간들을 원망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 댈튼 프리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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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하게 살해되어 잘려진 북극 순록의 뿔들이 사냥꾼들의 픽업트럭에 가득 실려 있다>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아오기 위하여 지불한 땀의 대가에 비해 데드호스는 너무나 인색한 접대로 손님을 맞는 곳이었다. 알래스카의 오일 파이프라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선 이곳에는 영구 거주자가 없다. 헬리콥터에 몸을 싣고 날아와 7일은 이 곳에서 일하고 다시 페어뱅스로 돌아가서 7일을 쉰다는 프루도 베이 유전에서 일하는 2,500여명이 인구의 전부이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붙여서 만든 조립식 호텔 하나와 이 곳에서 유일한 선물가게와 식당이 들어서 있는 ‘아크틱 카리부 인’(Arctic Caribou Inn)이라는 모텔 하나가 있을 뿐이다.
데드호스에는 술집도 오락실도 샤핑센터나 푸드스토어, 은행도 ATM도 없다. 그리고 움막 같은 간이 건물에 붙어 있는 US Post Office라는 초라한 표시가 나그네의 마음을 고향으로 달려가게 한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은 데드호스를 지옥이라 부른단다. 그리고 긴 겨울동안 낮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의 거의 모든 것들은 회색 옷을 입는다.
모험심과 호기심 때문에 이곳을 찾았던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유전 경비회사에 의해 길이 막혀 바다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데드호스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앵커리지에서는 갤런당 2.80달러인 기름이 이곳에서는 4달러가 넘어도 비싸다는 항의 한 마디 못하고 탱크에 기름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미 대륙의 북쪽 끝을 달려갔다 왔다는 자부심은 태평양을 건너온 나그네에게 어떠한 이민생활의 고독과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감을 선물로 가슴에 안겨 준 곳이었다.

알래스카 여행기 문의 (626)824-5956, 이메일 Baekseo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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