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음식과 나 ‘이정자 어머니봉사회장’

2007-03-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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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

알·내장 그득한 게딱지에 ‘밥 한공기 뚝딱’

‘어머니의 손맛’ 재미 어머니 봉사회 이정자 회장과 마주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기자에게는 언제나 앞치마를 두르고 빈대떡을 지지고 잡채를 버무리는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경로잔치, 양로원 방문 등등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김없이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하게 뛰어 다닌다. 그는 외모도 푸근하다. 평생 화 낼 것 같지 않는 웃는 얼굴이 화사하다. 어머니 같이 후덕하고 푸근한 이 회장을 푸드섹션 식탁으로 초대했다.


짭짤 달착지근한 속살 특유의 맛
잃었던 식욕 되살리는 데 그만
봉사로 다져진 이회장도 솜씨 좋아
직접 만든 ‘게장파티’주변에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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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봉사회의 이정자 회장이 먹갈비를 구우며 간장게장의 참맛을 설명해주고 있다>

오늘은 저녁이 아닌 점심이다. ‘어머니’를 만나는데 술자리를 만들 수야 없지 않는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부지런히 달려갔다.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이정자 회장이 “오늘 아주 좋은 음식 준비했으니 맛있게 먹고 가라”며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이 회장이 말한 식당이 ‘대성옥’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주 푸드섹션 7면의 식당 탐방 기사와 겹치기가 돼버려 난감했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이 회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제니 이 사장이 어머니봉사회의 오랜 회원이란다. 이 회장은 “회원이기도 하지만 봉사 많이 하는 어머니를 도와주는 일 아니냐”며 업소를 바꾸면 인터뷰 안하겠다고 버틴다. 이 회장의 은근한 압박(?)에 그냥 주저앉았다.

#간장(꽃)게장
이 회장이 고른 음식은 간장 게장이다. 한국인 치고 간장 게장 맛 모르는 사람 있겠나. ‘밥도둑’ 애칭까지 얻어가며 애어른 할 것 없이 ‘국민의 반찬’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요리다. 이 때문에 간장 게장은 웬만큼 잘하지 않으면 칭찬 받기 힘들다.
제니 이 사장의 간장게장 솜씨는 소문이 나 있다. 비법을 물었더니 원료인 게와 숙성이 중요하다며 2~3일 간장 끓여 담근 게의 신선도 유지가 관건이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 상식이다. 더 캐물었더니 “알면 다친다”는 표정이다. 그만의 간장게장 비법을 공개하기 싫은가 보다.
지글지글 ‘먹갈비’ 굽는 냄새가 시장기를 재촉할 즈음 게장이 식탁에 올라왔다. 오렌지색 알과 노릇한 내장이 시야에 들어오자 입안에서 군침이 샘솟는다.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이 회장이 알과 속살이 듬뿍 달려 있는 넓적한 몸통 부위를 집어 밥 위에 올려주며 “맛을 보라”고 재촉한다. 젓가락으로 집어 한입 깨물었다. 몸통의 부드러운 속살이 한 움큼 입으로 밀려든다. 잘 달여진 장맛에 알맞게 절여진 속살이 달콤하다. 천연 조미료가 따로 있나. 밥한 숟가락이 그립다.
이번에는 이 회장이 게 딱지를 집어 밥 위에 올려준다. 손바닥만한 게딱지 가장자리가 오렌지색 알들로 가득하다. 숟가락을 긁고 그 위에 밥을 올려 비벼 한입 가득 넣어 씹는다. 게장의 독특한 향과 어우러진 알과 내장이 식욕을 돋워준다. 이렇게 해치운 밥공기가 두 그릇. 배만 나올 터인데 걱정이 앞선다.
이 회장은 알맞게 구워진 ‘먹갈비’와 살덩이가 촘촘한 게를 부지런히 밥 위에 올려주며 먹으란다. 밥 한공기를 또 하나 비웠다.

#이정자 회장과 간장게장
어머니 봉사회에는 40명이 모인다. 1990년 ‘낙도 어린이 후원회’를 시작으로 모인 어머니들이 93년 어머니 배구단을 만들어 한국 전국 대회에 우정 출연했다가 태동한 것이니 벌써 14년째다.
당연히 여성들이 주축이되다 보니 회원들 간 친목이 제일 큰 과제다. 자식 키워온 세월만큼이나 단단히 익혀온 어머니들의 고집스런 내공이 경지에 오르다보니 개성들이 만만치 않다. 자칫하면 회원 간의 분란이 예상되는 것 아닌가. 이 회장만의 독특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누구 하나 치우치면 질투나 시기가 번득인다. 이럴 때면 “베풀어라”로 풀어간다.
이 회장은 음식을 잘한다. 그중에서도 간장게장 솜씨가 단연 돋보인다. 새벽시장서 꽃게 사다가 잘 씻고 손질한 다음 간장, 물, 마늘, 생강 끓인 물을 식혔다가 붓기를 세 번 반복한다. 그리고는 회원들을 불러 모은다. 이 회장의 게장파티다. 뭐든 만들어 회원들과 나눈다. 이 회장만의 회원 사랑으로 가득하다.
어머니회이다 보니 한인타운 단체들의 행사 지원 요청도 만만치 않다. 잔일 해달라는 부탁이 대부분이지만 마다하지 않는다. 뜻하지 않는 오해도 받는다. 지난해 한인회장 선거 때는 허리 수술로 집에서 요양하는 것도 모른 한 후보가 도와주지 않는다며 섭섭해 한 일도 있었다.
이 회장은 변함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78년 이민와 이듬해부터 시작한 다운타운 의류업체 ‘로즈 패션’(11가와 Los Angeles)을 한 장소에서 무려 30년 가깝게 운영하고 있다.
사실 이 회장의 술 솜씨는 만만치 않다. 10여년을 타운 단체장 활동을 하다 보니 회식자리가 빈번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의 술 솜씨를 묻어보면 “분위기 맞출 정도는 된다”는 대답이다.

<요리책의 간장게장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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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진간장 1컵, 꽃게 4마리, 청주 1/2컵, 물 1컵, 생강 1개, 마늘 5쪽, 마른 붉은 고추 3개, 양파 1/2개

만들기: ▲흐르는 물에 발 사이에 낀 지저분한 것 등을 말끔히 씻어내고, 등딱지와 배를 솔로 박박 문질러 씻는다. ▲간장맛이 잘 배어들도록 다리 끝 부분을 가위로 잘라낸다. ▲칼등으로 등껍질과 집게다리를 자근자근 두들겨 금이 가게 한다. ▲짜지 않게 진간장과 물을 1:1의 비율로 섞어 넣는다. ▲청주를 넣는다. 청주를 넣으면 곰팡이가 안 슬고 비린내를 없애 주는 역할도 한다. ▲생강과 마늘은 도톰하게 저미고, 마른 붉은 고추는 어슷하게 반으로 썰어 씨를 털어낸다. 양파는 통째로 넣는다. ▲양념한 간장물을 팔팔 끓인다. 한참을 끓여 간을 확인한 후 적당하다 싶으면 불에서 내려 차게 식힌다. ▲뚜껑이 있는 널찍한 그릇에 게를 차곡차곡 담고, 식힌 간장물을 붓는다. 이때 양파만 건져내고, 나머지 양념들은 그대로 둔다.

<글 김정섭·사진 이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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