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2007-03-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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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희생적인 헌금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월드비전을 창설한 미국인 선교사 밥 피얼스 목사는 평생 한국과 한국 국민을 사랑했습니다. 그가 목격했던,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희생적인 헌금’이라고 제목을 붙였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어느 날, 대구에 있던 피얼스 목사는 살을 에는 찬바람 속에, 불빛도 전혀 없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한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대구에는 이미 100만명이 넘는 피난민으로 거리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피얼스 목사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해, 이 형극의 시기를 한국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새벽에 추위를 뚫고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와있었습니다. 교인들은 조금이라도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았지만, 예배당 안에 앉은 교인보다 더 많은 신자들이 밖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공포, 고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피얼스 목사는 그들이 부르는 찬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며,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그들은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얼스 목사는 그 찬송에서 환희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찬송의 글귀 하나하나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찬송이 끝나고 목사님의 설교 순서 전에 헌금을 거두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들 교인들이 무슨 헌금을 낸단 말입니까? 밥 피얼스 목사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이 불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냉기와 배고픔에 허리가 휘어진 채로 앉은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헌금이란 말입니까? 목사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아침의 헌금은 이 도시에 밀려들어 온 피난민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여기 올 때 찢어진 옷 한 벌로 왔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 아침에는 옷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교인들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하나 둘 벗어 제단 앞에 드렸습니다. 어떤 쇠약한 남자는 자신이 재킷 안에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 드렸습니다. 한 어머니는 안고 있는 아기의 스웨터를 벗겼습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추위에 떨자 그 아이를 옷 속에 품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가 그 스웨터를 다른 어린 아이를 위해 드렸습니다.
피얼스 목사는 장엄하기까지 한 그 광경에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 후 한국민을 위한 모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 온 피얼스 목사는 한 교회의 집회에서 당시 감동을 토로했습니다.
“그 날 헌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희생적인 헌금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입은 옷을 벗을 필요까지야 없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으로도 충분히 한국민을 도울 수 있습니다.”
피얼스 목사는 평생 그 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희생적인 모습은 한민족 이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술회했습니다.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는 미국 내 한인 후원자들의 도움이 지난해 1,000만달러를 넘었습니다. 코리아데스크가 창설된 이래 처음입니다. 한인과 1대1 결연 후원을 받고 성장하는 전 세계 아동도 3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피얼스 목사가 57년 전 대구에서 맛본 감동에 버금가는 것입니다. 옷가지를 벗어 헌금하던 민족이 이제는 풍요함 속에서 나누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57년 전 가장 희생적인 헌금을 드렸던 것이 우리 민족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 본이 21세기에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써내려 가는 나눔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헌금하시겠습니까?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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