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캘리포니아 미션 이야기 <7·끝>

2007-03-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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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에 대한 명상의 기회로

역사적 흔적에 강건함과 무상함 교차
도시문명 일군 수도사열정 새삼 숙연

미국에는 1만개가 넘는 도시가 있다. 그 중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의 하나가 샌프란시스코라고 한다.
‘미션 돌로레스’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샌프란시스코 미션은 1776년 6월에 건립되었다. 그런데 이 미션은 한 번도 전성기를 누려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날씨가 좋지 않았으며 땅도 모래가 많아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션 샌프란시스코는 1832년 멕시코 정부의 미션 세속화 정책에 의해 세속화된 후 줄곧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1849년부터 시작된 골드러시가 샌프란시스코를 바쁜 도시로 탈바꿈시키더니 이 시기에 밀려든 사람들이 미션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잠자고 있던 조용한 미션을 흔들어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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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샌프란시스코의 올드 미션(왼쪽)과 뉴 미션이 나란히 서 있다>

세속화된 이후 미션은 주로 경마장이나 도박 장소로 쓰이고 때론 선술집이 되기도 하였다. 가장 순수한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만들어진 미션이 세월의 부침에 따라 가장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기도 했던 것이다. 원래 세워진 올드 미션 바로 옆에 새로 지은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골드러시 때 많은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로 유입되면서 이들을 위한 종교적 행사를 치르기 위해 더 큰 교회가 필요하게 되어 원래의 올드 미션 옆에 세운 것이다.
올드 미션과 새 교회는 나란히 붙어 있으면서 하나는 과거를 하나는 현재를 보여준다. 인디언들이 정성으로 만들었던 올드 미션은 1906년 대지진 때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날 샌프란시스코에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새로 지은 교회는 올드 미션보다 더 크고 나중에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진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기술의 진보와 크기가 반드시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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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라파엘 미션의 질박한 예배당 내부>

샌프란시스코에서 50km 북쪽에 위치한 미션 샌라파엘은 원래 ‘치유의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병원이었다. 미션 샌라파엘은 캘리포니아에 첫 미션이 생긴 지 반세기 뒤인 1817년에 생긴 20번째 미션이다. 미션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시름하자 환자들을 위해 건조하고 따듯한 기후를 가진 샌라파엘 지역에 병원을 세운 것이 미션의 시초였다. 이곳에 요양 온 환자들이 회복되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 다른 미션에서도 아픈 환자들이 생기면 샌라파엘 미션으로 보냈다.
이렇듯 미션 샌라파엘은 처음에는 병원으로 시작했으며 후에 미션 샌프란시스코를 보조하는 보조 미션이 되었다. 시작이 병원이었기에 아름다움을 떠나 처음부터 실용적이고 간단하게 지어졌다. 하나의 긴 건물을 나눠서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사용했고 미션 안에는 작고 평범한 교회를 지었다. 건물은 병원, 수도사들의 거주 지역, 교회의 순서로 단순한 일자형 구조로 지어졌다. 나중에 미션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졌을 때에도 미션의 정형인 사각형의 구조물을 만들지 않고 그대로 일자형 건물을 유지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나파와 소노마 밸리는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와인 생산지이다. 나파와 소노마 밸리에는 남북으로 약 50km에 걸쳐서 무려 500여개의 크고 작은 와이너리가 밀집되어 있으며 매년 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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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토담집 같은 소박한 분위기의 미션 소노마>

포도나무가 뒤덮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소노마 골짜기, 유럽인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수천 년도 전에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스페인 신부 알티미라가 소노마에 미션을 지으러 왔을 때 인디언들은 신부에게 산을 따라 넘어가는 달의 궤도를 보여주며 이곳은 달의 계곡이라고 일러주었다. 이렇게 달의 계곡은 소노마 타운과 미션 소노마의 고향이 되었다.
소노마 미션의 예배당은 아주 심플하다. 지금은 예배를 보지 않는 곳이라 안에는 의자도 놓여 있지 않다. 일부러 가꾸지 않은 안뜰이 수수한 미션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그래도 황폐해 보이지 않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캘리포니아의 햇살 덕분일까? 그 흔한 잔디 정원도 없이 시골집 흙마당 같은 뜰에는 다른 미션에는 꼭 세워져 있는 세라 신부의 동상도 없다. 소노마의 소박한 풍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미션이다.
이상으로 캘리포니아 21개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마감하고자 한다. 미션을 찾아 떠났던 여행은 삶과 인간의 역사와 종교에 대해 깊은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면서 당당히 서 있는 미션의 여왕인 미션 샌타바바라에서 우리는 세월의 무게를 뛰어넘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역사적 흔적의 강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터만 앙상하게 남은 미션 샌미구엘에서는 인생과 역사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21개의 모든 미션에서 공통점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유한함을 아쉬워하며 영원의 절대자를 지향했던 수도사들의 종교적 열정과 또한 신대륙의 땅을 개척하고 뿌리내리려 했던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었다. 이러한 열정과 노력이 지금의 샌디에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으로 대변되는 화려한 캘리포니아의 도시 문명을 만들어내는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책 ‘미션을 따라가는 캘리포니아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에게 캘리포니아 미션에 대한 조그만 안내서가 될 수 있다면 무척이나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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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트레일의 마지막 미션임을 알려주는 표석>

샌프란시스코 지역 3개 미션 주소 및 연락처
▲샌프란시스코(Mission San Francisco de Asis):
3321 16th Street, San Francisco, CA 94114 (415)621-8203
▲샌라파엘(Mission San Rafael Arcangel):
1104 Fifth Avenue San Rafael, CA 94901 (415)454-8141
▲소노마(Mission San Francisco de Solano):
114 East Spain Street, Sonoma, CA 95476 (707)938-1519

글 : 박진선(여행작가) ·정영술(UCI 특별연구원) 사진 : 박형주(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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