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커버스토리 ‘또 다른 베니스 영화제’

2007-03-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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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아닙니다

베니스란 도시를 언급하면 일반적으로 곤돌라가 떠다니는 이탈리아의 항구도시를 생각한다. 그 도시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남가주의 베니스를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느 베니스?’라고 되묻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1905년, 처음 타운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원조 베니스와 구분하기 위해 ‘미국 베니스’로 통했고, 해안 관광지로 자리 잡은 뒤에는 지역별 구분 없이 ‘베니스비치’로 부르게 되었다. 이렇듯 이름 자체에 복잡한 사연이 있는 베니스에 영화제가 생겨났을 때 일어날 혼란은 쉽게 짐작할 만한 일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며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버젓이 두고 미국 베니스에서 소규모 지역 필름 페스티벌을 시작하면, 과연 무엇으로 이름 지어야 하는지 다소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던 것.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또 다른 베니스 영화제’(The Other Venice Film Festival). 언뜻 듣기엔 우습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남가주의 언더그라운드 및 얼터너티브 시네마의 중심지로 자리해온 베니스의 성향과 특징을 고려해 보면 독특한 이름이 풍기는 보헤미안적 개성이 지극히 당연하고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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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베니스 필름 페스티벌의 주요 행사장인 일렉트릭 라지 입구에서 2006년 참가자들이 영화 상영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전형적 스타일 반기, 자유분방
베니스비치 언더영화인 잔치
올 4회째, 3월15일부터 나흘

베니스는 원래부터 전통이나 인습을 거부하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충격적인 가사와 무대 매너로 사회의 모든 규범과 틀을 부정했던 록밴드 ‘도어스’의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을 비롯하여, 많은 영화인들이 무명시절을 보낸 곳이다.
줄리아 로버츠, 앤젤리카 휴스턴, 니콜라스 케이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이 거주한 바 있으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할리웃에서 부각된 것도 베니스의 골즈 짐(Gold’s Gym)에서 운동을 하면서 인맥을 넓힌 덕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그런 베니스에 지역 영화인들의 축제가 생겨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첫해였던 2004년, 불과 14편의 영화로 출발했지만, 2005년에는 40여편, 2006년에는 75편이 출품되었으며, 4회째를 맞이하는 올해는 90여편의 장편, 단편,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만화영화, 뮤직 비디오 등이 선보일 예정. 특히 올해는 청소년 영화, 정치 영화, 그리고 여성 감독의 작품을 따로 소개함으로써 본격적인 지역 영화제의 구색을 갖춰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제 기간 에 주행사장인 일렉트릭 라지의 로비에서 미술전시회, 개념미술 인스털레이션, 그리고 라이브 밴드와 DJ가 이끄는 파티 등이 준비되어, 단순한 영화 시사회와 토론회, 웍샵 등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스타일에서 탈피한 축제 분위기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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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리셉션이 열리는 일렉트릭 라지의 로비. 이곳에서 영화제 기간에 미술 전시회 및 각종 파티가 진행된다>

음악-미술이 있는 시사회
“구경은 싫다, 관객도 놀자”

디 아더 베니스 영화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폐막식과 함께 열리는 애보트상(Abbot Awards) 시상식. 유럽이나 동부에 버금가는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해안 휴양도시 건설을 목표로 베니스를 만든 백만장자 애보트 키니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애보트상으로 명명된 이 상은 대형 제작사의 블록버스터 예산이나 기술 없이 순순한 창작성과 예술성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에 주어지는 영예이다.
지난해에는 감독 마이클 프레스맨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프랭키 앤드 자니 아 매리드’(Frankie and Johnny Are Married)가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독창적인 활동을 벌이는 영화인에게 ‘매브릭 애보트’, 지역 예술에 공헌한 개인, 또는 기관에게 ‘아츠 앤드 커뮤니티 애보트’,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작품에게 ‘오디언스 초이스’ 등 다양한 부문의 상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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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베니스 필름 페스티벌의 공동설립자 개리 엘렌버그, A.J. 퍼럴타, 루비 델라카사스>

장-단편, 뮤직비디오, 청소년 영화
여성 감독의 작품 등 90여편 출품
한인 박재윤 실험영화도 선보여


올해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개막일 단편 영화 부문의 첫 작품으로 선보일 코미디, 공포, 가족 드라마 ‘프리덤 프롬 폴리’(Freedom from Folly), 3월17일 토요일 저녁 6시에 일렉트릭 로지에서 시사회를 갖는 한인 영화인 박재윤씨의 실험 영화 ‘이보케이션’(Evocation) 등이 있다.
기간은 3월15~18일. 장소는 일렉트릭 라지(The Electric Lodge, 1416 Electric Ave., Venice, 310-306-1854)와 스위치 스튜디오스(Switch Studios, 316 S. Venice Blvd., Venice,

310-301-1800) 두 곳에서 행사가 나뉘어 진행된다.
티켓은 이벤트당 10달러, 개막일 시사회 및 리셉션 20달러, 1일 패스 25달러, 그리고 모든 이벤트를 나흘간 입장할 수 있는 페스티벌 패스 50달러.
자세한 프로그램 일정 및 장소는 웹사이트 www.othervenicefilmfest. com을 방문하거나 info@veniceofilmfest.com으로 이메일을 보내면 답장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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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프랭키 앤드 자니 아 매리드’의 광고 포스터. 몬트리얼 필름 페스티벌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작품이다>

남가주 영화제 월별 스케줄
1월 : 인터내셔널 패밀리 필름 페스티벌 (International Family Film Festival): 1월, 또는 2월에 베벌리힐스와 할리웃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가족 영화제.

3월 : 디 아더 베니스 필름 페스티벌(The Other Venice Film Festival): 3월 중순, 나흘에 걸쳐 베니스비치에서 열리는 지역 영화제.

4월 : 페스티벌 오브 필름 느와르(Annual Festival of Film Noir): 아메리칸 시네마테크 후원으로 할리웃의 이집션 디어터에서 열리는 범죄, 미스터리, 폭력 영화제.

- 인디언 필름 페스티벌 로스앤젤레스(Indian Film Festival of Los Angeles): 인도 영화와 인도계 영화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기 위한 영화제로서 할리웃과 인근 극장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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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매브릭 애버트상을 수상한 로저 콜만과 상을 전달해 주는 주최측의 A.J. 퍼럴타. 콜만은 1980년대와 90년대, 베니스 메인 스트릿에서 컨코드-뉴 호라이즌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남가주 독립영화 제작에 기여한 인물이다>

- 폴리시 필름 페스티벌 로스앤젤레스(Polish Film Festival Los Angeles): 4월말부터 5월초, 할리웃을 중심으로 예술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들에서 폴란드 영화와 폴란드계 영화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5월 : LA 아시안 퍼시픽 필름 페스티벌(LA Asian Pacific Film Festival): 동양계와 동남아시아계 영화제로 5월초, 할리웃 디렉터스 길드 및 동양계 소극장들에서 진행된다.

-실버레이크 필름 페스트(Silverlake Film Fest): 할리웃, 로스펠리즈 다음으로 예술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실버레이크에서 5월 초부터 중순까지 열리는 인디펜던트 영화제.

6월 : 댄스 카메라 웨스트 댄스 필름 페스티벌(Dance Film Festival): 비영리단체 댄스 카메라 웨스트에서 개최하는 춤과 관련된 영화와 영화 속의 댄스를 기념하는 축제. 6월 한달간 게티센터, 해머뮤지엄,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등 다양한 기관들과 연계를 맺어 영화 상영 및 관련 예술 축제를 벌인다.

-할리웃 블랙 필름 페스티벌(Hollywood Black Film Festival): 흑인 영화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영화제. 6월초, 베벌리힐스를 중심으로 흑인 영화인이 연출한 영화들을 볼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필름 페스티벌(Los Angeles Film Festival): LA 타임스에서 후원하는 국제 영화제. 기간은 6월말부터 7월초.

7월 : 아웃페스트, 로스앤젤레스 게이 및 레즈비언 필름 페스티벌(OUTFEST, LA Gay & Lesbian Film Festival): 남가주에서 열리는 영화제 가운데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9군데 다른 장소에서 200여편의 게이 및 레즈비언 영화인들의 작품이 소개되고 4만명 이상의 관객이 모인다. 약 2주에 걸쳐 진행되며, 올해로 25회를 맞는다.

-키츠 필름 페스티벌(IFFF Kids Film Festival): 인터내셔널 패밀리 필름 페스티벌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영화제. 7~18세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작품만 다룬다.

-액티비스트 필름 페스티벌(Annual Activist Film Festival): 7월말, 할리웃 이집션 디어터에서 환경오염, 동물 학대, 인권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을 상영한다.

8월 : 모자이크 필름 페스티벌(Mosaic Film Festival): LA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소극장들에서 완전 신인 감독들의 참신한 단편영화 모음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

-다큐위크(Docuweek): 아카데미상에 출품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미리 모아서 선보이는 자리. 8월 중순 헐리웃에서 열린다.

9월 : LA인터내셔널 쇼트 필름 페스티벌(L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단편영화제다. 400여편의 순수 단편영화만 모아서 할리웃 극장들에서 시사회를 갖는다.

10월 : LA 라티노 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벌(Latin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열흘간 라틴계 영화와 영화인들을 기념하는 축제.

-할리웃 필름 페스티벌(Hollywood Film Festival): 10월 셋째주, 1주일에 걸쳐 다분히 할리웃적인 작품들을 모아서 보여준다.

11월 : 인터내셔널 스튜던트 필름 페스티벌 할리웃(International Student Film Festival Hollywood): 노호 아츠 디스트릭(NoHo Arts District)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축제.
쪾AFI 페스트(AFI Fest): LA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 권위 있는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 주최로 전 세계에서 출품된 100여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11월 첫째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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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나 인습을 거부하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예술가들이 예전부터 많이 모여 살아온 베니스. 한 때 이곳에 거주했던 짐 모리슨의 벽화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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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베니스비치는 무수한 영화와 TV쇼 로케이션으로 알려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다>

고은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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