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3-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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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살려주세요!”

현대사회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바쁘다’는 단어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 ‘난 요즘 한가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시간을 다퉈 결정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끊이질 않는다. 더구나 능력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요즘 세상에선 한가하게 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란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쉬지 않고 일한다면 며칠 안 가서 병이 날 것이다. 몸뿐 아니라 번뜩이는 지혜도 건강한 사람에게 가능한 축복이다. 몸이 아프다면 정서적인 여유와 넉넉한 인정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바쁜 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 단 한번 인생만을 살 수 있는 우리에겐 건강한 삶에 대한 숙제가 주어진다. 오늘은 그 숙제에 대한 답안 중 하나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아이들이 여섯이고 하루종일 쉴 새가 없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살림’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살림은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집안 청소나 설거지, 빨래 등 집안 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살리고, 자녀를 살리고, 이웃과 나라를 살리는 일이 살림인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적잖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것을 재료로 ‘살림’을 할 것인가? 어떤 재료가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날 때마다 고민하고 묵상하며 기도 손을 모아왔다. 그러는 동안 동일한 24시간 속에 해야 할 일들은 여전한데도 알 수 없는 마음의 여유와 넉넉함을 누릴 수 있었다.
우선 ‘말’이란 재료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옛 말에도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공손한 한마디는 비싼 선물보다 값지고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마음으로 살게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이기적이고 무례한 말 한마디로 평생 상대방을 불행하게 하는 나쁜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다. 말 한마디가 떨어지는 곳엔 반드시 열매가 맺힌다는 말이다. 목회를 하다보니 말하는 대로 그 사람의 인생이 달려있음을 많이 경험한다.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며 감사가 끊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툭하면 욕이 나오고 무슨 일에든지 부정적인 말이 앞서는 사람. 건드리면 불평과 불만이 쉬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말한 대로 살게 되는 사실을 보면서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멀리 가지 않아도 매일 일상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누구에게 칭찬을 듣는 날은 보약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작은 비난이라도 듣는 날은 맥이 빠지고 좌절하는 기운을 이기지 못할 때도 있다. 맥이 빠진다는 말은 마음이 죽는다는 말이다. 마음뿐 아니라 꿈도 죽고 희망도 죽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는 아주 무서운 것이 남을 죽이는 말인 것이다. 세 치도 안 되는 혀에 생사가 걸려있음을 안다면 함부로 말하는 일은 아주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명을 살리는 말 한마디는 죽었던 꿈도 살리고, 잃었던 미소도 되찾게 하는 행복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24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지, 새벽녘에 눈을 뜨면서 행복한 고민을 시작해 본다.

정 한 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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