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음식과 나 오징어 통구이

2007-03-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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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재 전 한인타운 방범순찰단장

고추장 살살 발라가며 구워내면… “꼴깍~”

“얍!” 외마디 기합에 머리 만한 돌덩이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와~~”(구경꾼들의 탄성). 지난해 중순까지 한인타운 민간방범순찰단(SPART)을 이끌었던 윤근재 전 단장의 ‘차돌 깨기’ 시범이다. 윤 전 단장의 주먹은 울퉁불퉁 성한 데가 없다. 그의 주먹 마디마다 이미 단단해진 굳은살이 두껍게 덮여 있다. 이번주 초대 손님이다.


쫄깃쫄깃 육질이 입안에 착착 달라붙어
속은 온갖 야채로 꽉 채워 ‘웰빙 술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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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키가 작았지요. 당연히 맞아서 울고 들어오는 날이 많았어요”
윤 전 단장은 단신이다. 키가 작으니 덩치 큰아이들에게 항상 맞을 수밖에 없었다. 보다 못한 윤 전 단장의 큰형이 그를 중국 무술도장으로 데려갔다. 그때가 중 1때 였단다. 성동 체육관서 권투, 레슬링 등 닥치는 대로 배웠다. 그 후로는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맞지 않고 때리고 들어오니 문제가 커질 수밖에.

#오징어 통구이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치던 어느 날 저녁, 한인타운 웨스턴과 1가 인근의 ‘뜨락’(125 N. Western Ave.)에서 윤 전 단장이 기자를 맞았다. 이곳은 그가 운영하는 매운음식 전문 한식당이다.
반갑다며 악수를 나누기가 무섭게 윤 전 단장이 소주 1병에 맥주 2병을 주문했다. 비가 와 기분도 ‘꿀꿀’하니 소맥으로 빈속부터 축이자는 말과 함께. 그의 ‘술발’은 끝이 없기로 소문나 있다. 그가 술에 취해 쓰러지는 것을 본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 그와 마주 앉아 대작을 한다면 일찌감치 취재수첩을 접어야 할 듯싶다. “요령껏 피하자”가 오늘의 ‘취재 강령’이 돼버렸다.
윤 전 단장이 고른 안주는 4가지. 뜨락의 명물이라는 ‘매운 갈비찜’ ‘생굴 무침’ ‘삼겹살 김치볶음’, 그리고 ‘오징어 통구이’다. 그 중의 압권은 오늘의 화두가 될 ‘오징어 통구이’다.
잘 씻고 다듬은 통오징어 속에 각종 야채로 속을 채운다. 그리고는 물엿 등 다양한 양념을 버무려 만든 고추장 소스를 오징어에 골고루 입힌다. 고추장 소스는 처음부터 너무 많이 바르면 안 된다. 천천히 구워가며 양념이 고루 배도록 여러 번 발라가며 살짝 구워내야 제 맛이 난다.
벌건 소스를 온몸에 두른 채 잘 구워진 통오징어가 먹음직스럽게 식탁에 올라 왔다.
여종업원이 가위로 통오징어를 둥글게 자르는 동안 윤 전 단장이 소주와 맥주가 섞인 맥주잔을 들어 ‘원샷’을 강권한다. “에라 모르겠다” 시원한 맥주잔을 한꺼번에 비운 다음 동그랗게 잘려 있는 통오징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살짝 구워내 쫄깃한 육질이 고스란히 입안에 전해진다.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의 맛까지 어우러져 입안의 술기운이 확 가시는 듯 했다.
‘뜨락’에서 오징어 통구이를 맛보려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오후 7~8시대는 피하는 것이 좋다. 잘 씻어 냉동시킨 오징어를 꺼내 녹이고 속을 만들어 집어넣고 구워 내려면 잔손질이 많이 가고 시간도 걸리는데 주방 아주머니가 음식 주문이 쇄도하면 “오징어 다 떨어졌다”며 안 만들어 준다. 주인인 윤 전 단장조차도 주방에서 “없어요”하면 없는 줄 알고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한다.
오징어는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유럽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국을 중심으로 정력과 간장 보호제로 먹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집에서도 쉽게 해 먹을 수 있으니 아이들의 간식이나 남편의 술안주로도 오징어 통구이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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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타운 방범꾼 윤근재 전 한인타운 민간방범순찰팀 단장이 자신의 운영하는 식당 뜨락에서 오징어 통구이를 한 점 들어 보이고 있다>

#윤 전 단장과 타운방범


소맥이 몇 순배 돌면서 빗소리로 우중충해진 마음에 활기가 돌 무렵, 윤 전 단장과의 대화는 음식을 떠나 타운 방범으로 옮겨갔다.
그가 타운 방범에 쏟았던 관심은 각별하다. 방범순찰팀 SPART의 전신격인 KWT(코리아타운 워치팀·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중심으로 87년 발족됨) 단장부터 지난해 물려준 SPART 단장까지 20년 가까이 타운 방범에 앞장서 왔다. 지난해 연말 발족된 지 두 달만에 흐지부지 무용지물이 되어 가는 LA 한인회 방범 순찰팀을 처음 입안해 기초를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주거지는 LA가 아니다. LA 북쪽으로 50마일이나 떨어진 옥스나드다. 지금도 그곳에 타인종 주민을 상대 한 부페식당 ‘스완 코리안 바비큐’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뜨락’은 방범 순찰한다며 수도 없이 LA를 들락대는 남편을 위해 부인 윤선희씨가 2년 전 차린 식당이다. 위험한 밤길 운전보다는 LA에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부인의 판단에서였다.
술기운이 오르자 윤 단장은 조직적인 타운 방범 시스템의 부제에 상당한 아쉬움을 표하며 열변을 토했다. 그의 아쉬움은 SPART팀 단장을 맡으며 추진했던 한인타운 전 지역 무선 순찰팀 가동이 관할 경찰과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무산된 것과 한인회 방범 순찰의 중단이다.
그런데 그의 장사 수단은 방범 의지만 못한 것 같다. ‘뜨락’의 ‘매운 갈비찜’에는 좋은 육질의 상급 갈비가 듬뿍 담겨 나온다. 가격도 싸 고객들의 주문이 밀릴 정도다. “사람이 많으니 돈 많이 벌겠다”고 부러워하는 기자에게 그는 “퍼주고 나면 뭐가 남겠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가격을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손님 많다고 돈 올리는 얄팍한 주인”이라는 소리 듣기 싫다며 “그래도 퍼주면 마음이 풍성해 진다”며 웃는다.

내피도 깨끗이 긁어내고 안팎에 칼집 내야

#요리책의 오징어 통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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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 오징어 1마리, 통깨 1작은술, 고추장 2큰술, 설탕 1과 1/2작은술, 다진마늘 1작은술, 간장 2큰술, 참기름 1/2작은술, 다진 파 1작은술

만들기 - 오징어를 위에서 아래로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뺀다. 오징어 안쪽에 붙어 있는 내피를 깨끗이 긁어내고 안쪽과 바깥쪽에 가로 세로로 칼집을 낸다. 매콤달콤한 양념 고추장을 만든다. 석쇠에 오징어를 올려놓고 붓으로 양념고추장을 골고루 바르면서 천천히 굽는다. 상에 내기 전에 양념고추장을 한 번 더 바른 뒤 통깨를 뿌려준다.

<글 김정섭 기자·사진 신효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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