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힘 빼고 내려놔’

2007-03-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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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몇 시간 파트타임 일하는 것으로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시간을 늘려 일을 하지 않으면 다달이 돌아오는 페이먼트는 계속해서 연체료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풀타임 직장을 구할 때까지 일하는 곳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루 12시간 일하는 것으로 스케줄을 짰다.
하루 6시간 서서 일하는 것도 헉헉거리던 내가 12시간을 일하려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 승욱이와 또 밤새 씨름을 하고 날이 밝으면 아이들 학교 보내고 돌아서면 다시 일하러 가야 한다.
일년 반 전에 교통사고로 목디스크가 생겼지만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은 직후여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몸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승욱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거기다 승욱이가 내 몸을 놀이터 삼아 놀기 때문에 언제나 몸은 만신창이다.
어디 이 고질병이 승욱이 엄마만 가지고 있겠는가, 대부분의 장애엄마들은 여기저기 전국적으로 쑤시고 차라리 안 아픈 곳을 말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돈을 번다고 애들은 언제나 엄마에게 맡겨두고 밖에서 이리 동분서주하고 있으니 도대체 집안일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니 큰 녀석이 제대로 숙제를 해가지고 가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모르고 살고 있다. 준비물도 언제나 임박해서 아침에 학교갈 때 챙겨주니 큰아이의 짜증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어깨가 뭔가에 짓눌려 있는 것 같다. 내 어깨 위에 집 페이먼트, 공과금, 생활비, 아이들, 그리고 개인적인 수많은 일들이 나의 어깨를 내리 누르고 있다. 정리가 되지 않은 뭔가 복잡한 이 문제를 다 짊어지고 가기엔 나의 능력에 한계를 느낀다.
한가지 일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으니 머리는 언제나 긴장상태이고, 마음은 언제나 조급한 상태이고, 몸은 언제나 피곤한 상태이다.
나는 나에게 ‘민아야. 어깨 힘 빼고 내려놔. 네가 다 짊어지고 갈 수는 없어’
무엇부터 내려 놓아야하지?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먼저 짐을 덜 수 있는 것이 집이다. 아파트로 다시 가자. 승욱이도 곧 기숙사로 가는데 이 집이 부담스럽다.
내일부터 이사갈 집을 구하고 하나둘씩 행동에 옮기자. 백보전진을 위해 잠시만 물러서자. 과분한 것을 억지로 들고 있기 보단 가지치기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가지치기 하고 긴축정책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돈 버는 것은 너무 힘드는데 쓰느 것은 순식간이니 쓰는 것을 줄이고 모든 지출을 자제하는 것만이 지금 우리 가족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불꺼진 집 내 방에서 엄마와 승욱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난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이사가자. 아파트로. 엄마한테 너무 미안한데 도저히 돈을 감당할 수가 없어.” 엄마가 너무 기막힌 얼굴로 날 쳐다본다.
그 다음날부터 엄마와 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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