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3-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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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희생제물

르네 지라르(Rene N. Girard·1932-현재)는 현재 서구 인문학에서 살아있는 거목으로 학계의 중심에 있는 분입니다. 그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나 ‘역사 고문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존스 홉킨스 대학, 뉴욕 대학 등을 거쳐 스탠포드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40여년 동안 그는 엄청난 고문서들을 읽고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 인간 문명의 기원을 새롭게 밝혀냈습니다. ‘미메시스’ 이론을 구축했고 현대 사상과 기독교 신앙에 새로운 안목을 제시했습니다.
1988년 인스브르크 대학 신학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5년 프랑스 아카데미 학술회원으로 선출됐습니다. 2006년 독일 튀빙겐 개신교 신학부에서 ‘영예로운 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르네 지라르 학회가 구성되고 생전에 그를 초빙하여 한국 인문학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라르는 고문서에 수록된 모든 신화적인 문서들과 역사와 문학적 기록들을 통해 사람은 짐승과 달리 모방 심리에 의한 질투와 시기심을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인간은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의 점증하는 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희생제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제물은 단순히 양이나 염소에 그치지 않고 인간 자체를 제물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 반복되는 폭력과 희생제물을 끝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희생 제물로 자기를 바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집필 10년만에 탈고했다는 ‘폭력과 성스러움’(1972)에서 잘 서술돼 있습니다.
지라르의 이론은 현대 인류가 폭력을 잠재우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진솔한 참회를 할 수 있고 질투와 시기를 잠재우는 자기희생을 할 수 있을 때 평화가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불타는 질투와 모방 욕구, 시기에 대한 깊은 성찰로부터 겸허한 자기 부족의 시인과 죄악의 고백, 희생적인 행동, 이것이 전제되어야 참된 사회적 평화는 이루어지고, 참된 화해의 길이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당연한 논리가 인문학계의 사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느끼는 점이 큽니다.
자기가 개척하여 거대 교회로 성장시킨 담임목사들이 은퇴할 때 자기 자녀에게 교회를 넘기는 세습 사례가 미국과 한국에 있었습니다. 설령 그것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인간의 내부에 도사린 시기와 질투, 폭력을 잠재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지라르의 이론은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자기희생만이 그 사회의 시기와 질투의 폭력을 잠재울 수 있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교회 지도자들이 다시 한번 새겨보아야 할 명제였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3,000명이 넘는 대형 교회를 일군 목사들이 미련 없이 교회를 다음 세대 지도자들에게 넘김으로써 아름다운 모범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스스로 물러나는 자기희생을 보임으로써 한국 교회를 시기와 폭력의 긴장에서 살려내고 있습니다.
지라르는 “모든 제도의 근원에는 종교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교회를 폭력의 긴장에서 살려내려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희생이 교회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 사회의 폭력을 잠재우는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지라르가 인문학 차원에서 밝혀낸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가 인류를 구원하는 최종적인 길이었다는 이론이 미주 교계에도 신선한 각성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송 순 태 (미주 시조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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