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2007-02-27 (화)
크게 작게
실천하는 믿음

옛날 한국 대통령 선거 때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유권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그 구호를 외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양심은 결국 비굴하거나, 상황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저는 신앙 생활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월드비전의 구호 중 ‘Faith In Action’이 있습니다. ‘실천하는 믿음’ 정도의 뜻입니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자기 연민을 통해 자기 만족을 얻는 이기적인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2월9일부터 8일간 필라델피아, LA, 시애틀 등지의 월드비전 후원자 7분과 아프리카 우간다로 비전 트립을 다녀왔습니다. 비전 트립의 가장 큰 목적은 후원자들이 직접 기아현장의 실제 모습을 체험하고, 그곳에서 월드비전 사업의 효과성을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순수 비행시간만 22시간이 걸려 도착한 우간다는 겨울이라도 작렬하는 적도 태양 아래 뜨거웠습니다. 열기와 습기를 품고 끈적거리는 공기는 “아하, 이곳이 아프리카구나”라고 느끼게 했습니다.
월드비전의 사업장이 있는 지방 산골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맨발에 찢어진 옷을 걸치고 이방인을 지칭하는 현지 단어인 ‘무중구’를 외치며 따라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 자녀들과 똑같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태어났지만 삶의 환경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의 삶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원통형의 흙벽돌 벽에 초가를 얹어 지은 3∼4평 남짓한 집에 8∼10명이 모여 사는 열악한 주거환경. 월드비전에서 우물과 펌프를 만들기 전에는 강이나 땅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했습니다. 여름에 창궐하는 말라리아나 장티푸스, 최근 들어 심각해지고 있는 에이즈 등은 아이들의 장래를 캄캄한 어둠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준비해간 학용품의 양에 비해 훨씬 넘치는 감사를 받아 부끄러웠습니다. 선물로 가져간 축구공에 바람을 넣어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미안했습니다. 지역 사회 지도자들과의 미팅에서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으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한 것은 한 달에 겨우 30달러 후원금으로 도운 것밖에 없는데, 거의 은인 같은 대우를 받으니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순박한 미소, 욕심없는 마음, 의심없이 주는 신뢰, 느낌가는 대로 마음을 주는 순수함에 제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렸습니다.
마을을 걸어갈 때면 다가와 슬며시 제 손을 잡고 함께 걷던 6세 미리암, 자신의 후원자를 만나 준비한 노래를 부르며 한없이 맑게 웃던 7세 앨리스와 11세의 에드워드, 부모가 모두 에이즈로 죽어 3형제의 맏이로 묵묵히 집안을 꾸려 가는 15세 티모시….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내 자녀들입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우간다에 두고 왔습니다. 마음까지 미국으로 갖고 올 때까지 저는 반성의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실천 없이 나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해 온 저를 질책할 것입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며, 실천하기에는 인색했던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다시 돋아나면 다시 우간다의 아이들을 찾을 것입니다. 변화된 나의 모습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실천하는 믿음’을 갖고 말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