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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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의 신앙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혼인식장의‘첫 기적’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께서는 갈릴레아 지방 ‘가나’에서 거행된 결혼식장에서‘첫 기적’을 행하셨다. 그것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계획을 접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이어서 한마디로 파격이었다.
과연 무엇이 그토록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아직 당신이 계획하고 있는 때가 아님을 밝히는데도, ‘저분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인들에게 믿고 말하는 성모 마리아의 예수님께 대한‘믿음’아니었을까.
알고 보면 성서 곳곳에서 나타나는 기적의 현장에는 한결같이 이런‘믿음’이 깔려 있다. 믿는 대로 이루어주신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눈먼 장님이 길가에서 애원할 때도, 절름발이가 걷기를 원할 때도, 보기 흉한 나병 환자가 낫기를 청할 때도, 예수님께서는 한결같이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청을 들어주신다.
심지어 죽은 지 삼일이 된 땅 속에 묻혀있는 나자로를 살려내실 때도 그의 누이들에게“내가 그를 살려낼 수 있다고 믿느냐”는 것만 물으셨다.
알고 보면 참 이상한 것이 믿음이다. 수술 환자를 대하는 의사에게도 자기를 믿고 순순히 대하는 환자의 경우는 결과가 예상 밖으로 좋게 나온다. 그런데 의심하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경우에는 아무리 잘해주려 해도 탈이 생긴다. 서로간에 주고받는 신뢰와 믿음의 전파 위력일까?
아무튼 믿음 하나 때문에 일어나는 기적들은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지금까지 남남이었던 생전 알지 못한 젊은 남녀가 결혼을 통하여 한 몸을 이룬다. 오직 믿음 하나 때문에 부모의 품을 떠나 자기 몸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분명 기적이다.
남이었던 배우자를 분명 자신처럼 믿기에 남자들은 피땀 흘려 번 돈을 아내에게 다 맡기고 산다. 그것도 기쁨으로 말이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나 친동기간보다도 더 가까운 한 몸이 되어버리는 신비체가 되어 사랑으로 살아가는 부부보다 더 큰 기적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건 분명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가나 혼인잔치에서 이루신 하느님 기적의 재현이다.
이 부부 사랑 안에서 결혼한 부부는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를 체험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사랑의 힘으로 이뤄지는 기적의 신비체이기에 말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부부의 혼인 성사는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성체성사’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신비체의 기적이라고 생각된다.
요즘 이 기적의 신비체인 가정들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이건 순전히 믿음과 사랑의 상실 때문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다. 하느님조차 감동할 믿음과 신뢰를 성모 마리아의 믿음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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