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과부 두 렙돈의 내려놓음’

2007-02-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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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반기부터 기독교 서점계를 강타하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내려놓음’이란 책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마친 후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유학시절 코스타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몽골에 들어간 이용규 선교사의 이야기이다.
몽골에서 평신도 사역자로 이레교회를 섬기는 일들과 그 전 유학 생활 동안 경험했던 순간 순간의 삶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는 책은 곳곳에서 진한 감동이 배어 나온다. 포기하기 어려운 자신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맡기면서,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기쁨을 깊이 깨달으면서 저자가 흘렸던 눈물의 고백들이 책을 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힘있게 전달되기에 이 책이 그렇게도 널리 읽혀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아마 동일한 영적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내려놓음의 훈련이요, 자기 포기와 자기 비움의 훈련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후 우리의 영성 훈련과 성장은 ‘예수 안에서 자기 성취’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자기 포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내 시선이 이용규 선교사의 책으로 향했다. 내려놓음의 책 표지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버드 박사 이용규 선교사의 천국 노마드.’
그 순간 내게 이용규 선교사가 내려놓은 것이 하버드 박사였기에 그렇게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물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이 선교사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 그리고 진솔한 자기포기를 절대 평가절하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책이 기독교 서적 뿐 아니라 일반 서적의 판매 순위에서도 베스트셀러를 달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가 내려놓았던 것이 하버드 박사였기 때문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오늘 이 시대의 신앙인들과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모습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내 주위에 여러 목회자들이 미국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세상적으로 볼 때 내일이 보장되어 있는 경영학 분야의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목회 길로 들어선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세상적으로 볼 때에 크고 귀한 것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께 헌신하는 분들의 삶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우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준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과연 이용규 선교사가 하버드 박사 학위를 내려놓았기에 그렇게 감동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주님께 무엇인가 큰 것을 내려놓고 드러매틱한 삶의 여정을 거쳐서 목회의 길을 들어선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목회자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놓을 만한 학력이나 실력은 없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묵묵히 주님이 맡기신 성도들을 목양하는 사역자들이 있다. 크게 사업을 하면서 힘있게 선교사들을 도우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물질적으로 헌신하는 경건한 신앙인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가진 것이라고는 오늘 하루 살아야 하는 일용할 양식 밖에 없어서 주님 앞에 무엇을 내려놓을까 고민하며 그 일용할 양식의 일부를 떼어 주님 앞에 내려놓는 성도들도 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주님은 우리가 내려놓는 것의 크기와 세상 가치에 따라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놓는 것이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과부의 두 렙돈에 해당하는 볼품없고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헌신에 담겨 있는 마음을 보신다는 것이다.
이제 우린 과부의 두 렙돈을 귀하게 보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이름 없이, 빛 없이 지역교회와 이웃들을 섬기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내려놓음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들의 손에 힘을 북돋아 주는 우리의 관심과 격려가 유난히 가문 올 겨울의 끝자락을 촉촉이 적셔주는 사랑과 회복의 단비가 될 것이다.

박혜성 (목사·아주사퍼시픽 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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