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영 행태 비판..임기말 과제 해결의지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 17일 청와대브리핑에 실린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한다’라는 제목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기고문은 참여정부 정체성 논쟁을 바라보는 노 대통령 개인의 소회와 비판적 견해를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은 기고 배경에 대해 신문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분들 간의 논쟁을 보면서 난감함을 느낀다며 논점이 너무 많고 어려운 전략논리와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서 일일이 반론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 지난날의 저의 경험에서 시작해 몇 가지 의견과 생각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갈수록 참여정부에 비판 강도를 높이는 진보진영을 향해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인가라며 거침없이 ‘쓴소리’를 던졌다.
동시에 이중적 태도를 버리고 사고와 행동에 있어 유연성과 책임성을 가지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이 글에는 노 대통령이 70년대 ‘유신 판사’에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쳐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정체성 변화에 대한 자기 고백과 함께 민주진영의 이중적 행태에 대한 통렬한 고발도 담겨 있다.
노 대통령이 작심하고 진보진영에 각을 세우며 태도변화를 주문하고 나선 것은 진보의 강한 반대에 부닥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등 임기말 주요 국정과제를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기고문은 노 대통령이 유럽순방을 떠난 지난 11일 탈고됐으나 해외순방 중 정치적 시비가 일까 우려해 설연휴로 발표가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주요 대목을 발췌, 요약한 것.
=유신헌법 공부하며 상대주의 철학 접해=
0...고시합격을 위해 유신헌법을 공부했다. 한때 이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 유신헌법 책을 쓴 학자들도 민주주의의 원리에 관하여는 소상하게 써놓아서, 민주주의를 받치고 있는 상대주의 철학을 접할 수는 있는 기회를 저에게 주었다. 이것은 일생동안 저의 생각을 지배하는 철학이 됐고, 이것을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유신과 5공은 저에게 새로운 사상에 접할 기회와 방황할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기도 했던 것 같다.
=종속이론 등을 압도적으로 접해=
0...80년대 초 변호사시절, 단지 정의감 만으로 시국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많은 사회과학분야 서적과 자료를 접하게 됐다. 물론 심오한 이론이 담긴 원론서도 접하기는 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종속이론, 사회구성체 이론, 민족경제론, 이런 것들이었다. 5.18 광주 이후 계속된 당시의 숨막히는 현실이 이런 이론과 유사하다는 점에 동의해 비타협적 투쟁을 실천도 하고 주장하고 다니기도 했다.
=현실은 이론과 다르게 전개돼=
0...한때는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버리려 한 일도 있고, 89년 전민련이 결성되었을 때에는 거기에 은근히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현실은, 우리가 읽고 말하던 이론이 예언했던 방향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진보진영은 개방을 할 때마다 개방으로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경제는 모든 개방을 성공으로 기록하면서 발전을 계속했다.
=민주진영 분열, 이기주의 많았다=
0...민주진영은 단결을 내세웠지만 작은 차이로 분열하는 일도 많았고, 대의를 내세웠지만 이기주의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 제가 들어왔던 논리가 틀렸거나 현실이 논리를 배반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저는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더욱이 체계적으로 정연한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논리에 빠져 현실에 맹목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해 왔다.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상체계의 완결성을 신봉하거나, 현실을 사상과 논리체계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