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2-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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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천국장?

저희 집은 청국장을 자주 해 먹습니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청국장입니다. 평생 사랑 받는 아내가 되고 싶어 시어머니께 청국장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해마다 메주콩을 푹 삶아서 3일 동안 손바닥만한 히팅 패드를 저온에 맞추고 잘 삶아진 콩을 들통에 입구까지 붓습니다. 김이 안 새게 못 쓰는 담요며 두꺼운 재킷 등을 싸서 거라지에 놓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살짝 떠볼 때 여러 갈래 하얀 실같이 올라오면 드디어 맛있는 청국장 완성!
아이들을 부랴부랴 재우고는 남편과 마주 앉아서 소금을 뿌려가며 절구에 찧습니다. 졸다가 깨고, 사랑 눈빛 맞추며 밤새워 만든 청국장을 샌드위치용 지퍼백에 가득 담아 편편하게 눌러서 입구를 봉합니다.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사랑스런 분신들을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는 일년 내내 아침이고 저녁이고 시도 때도 없이 먹습니다.
100% 콩으로 만들었기에 영양가로 따진다면 우유보다도 훨씬 좋은 영양식입니다. 찌개거리로 알려져 있는 청국장에는 항암, 항산화, 면역증강, 생리 활성화 등 각종 물질이 골고루 들어있습니다. 보약 중에 보약이 확실하다는 믿음까지 있어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열심히 해 먹습니다.
청국장을 풀고서 두부와 파가 잔뜩 올려진 뚝배기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동할 즈음이면 저마다 놀던 여섯 아이들이 제 주위에 몰려듭니다. 아이들이 삽시간에 서로 간을 봐주겠다고 달려듭니다. 막내 조슈아까지 고개를 들고 제가 떠준 국물을 맛보며 행복해하면 역시 엄마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에 밥상을 차리는데 우리 집 넷째가 그러네요. “엄마! 천국장 많이 먹으면 천국에 빨리 가요?”
그 옆에 있던 셋째가 금방 말을 받습니다. “야! 천국 가는 건 죽는 건데?”
“아니, 난 천국장 많이 먹고 집에서 천국놀이 하고 싶어서 그래.”
맛있게 청국장을 먹으면서 넷째 예나의 얘기가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냄새나는 청국장을 먹고는 있지만 사랑과 감사함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장이 아니겠나 하는 결론에 다다른 것입니다.
아무튼 매일 우리 집 밥상에 ‘천국장’이 올라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를 살찌우고 행복하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천국장을 먹는 식탁에 행복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깊은 맛이 느껴져서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영양만점의 훌륭한 완전식품, 천국장. 게다가 천국까지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이 듬뿍 들어간 행복 맛보기의 찌개인 천국장. 동시에 여러 가지 재료가 섞어져서 훌륭한 맛을 낼뿐만 아니라 우리 몸을 이롭게 하는 재주까지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천국장’이 아니겠어요?
나 혼자만 튀어나올 때는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서로 서로 어우러지고 사랑으로 섞어지는 희생은 물론 내 안의 성분까지 녹여서 감칠맛을 만들어 내고야 마는 보글보글 끓는 천국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져 봅니다.
‘나도 혼자서 잘난 체 하는 따로국밥이 되지 말고,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섞어지고 어우러지는 섞어찌개가 되어 보리라.’
요즘 바람도 많이 차가운데 가슴까지 데워지는 천국의 찌개로 오늘 저녁 행복을 맛보시면 어떨까요?

정 한 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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