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선교 중 테러도 당했죠”

2007-02-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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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요한동경교회 일군 김규동 목사
남가주 영적각성집회서‘기적의 삶’간증

16∼18일 남가주 사랑의교회(담임목사 김승욱)에서 2007년 영적각성집회를 갖는 김규동 목사(일본 요한동경교회)는 여러 면에서 화제다.
‘선교사의 무덤’이라는 일본에 건너가 현재 출석 교인이 3,300명인 교회를 일궜다. 이 교회는 지금 일본 최대다. 이 교회 외에도 15개 교회를 개척했다.
1998년에는 기독교 지도자라는 이유로 일본 적군파 소속 혁명노선협의회에 의해 테러를 당해 죽을 고비도 넘겼다. 두 팔이 다 끊어지고 광대뼈가 으스러지고 내복이 피로 다 젖었었다. 테러단은 김 목사가 사망했다는 보도자료까지 내기도 했다. 살아난 게 정말 기적이었다.
김 목사가 피를 흘리고 있을 때 교회가 가장 부흥했다.
김 목사는 1988년 도쿄에서 16명으로 요도바시교회 한국부(현 요한동경교회)를 창립했다. 이 교회가 일본 웬만한 대도시에는 다 들어섰고 한국에까지 세워질 정도로 성장했다.
요한동경교회는 출석 성도 중 80%가 대학생과 젊은이로, 일본 선교의 대표적인 교회다. 온갖 신이 많은 일본에서 매일 아침 새벽기도회가 열리는 특별한 곳이다. 일본 교회 평균 성도 수가 23명인 것에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다.
기독교인 비율이 인구에서 1%인 일본에서 김 목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한국식 덕택이다. 철저한 리더 교육, 조직화된 제자훈련 등이 모두 뜨거운 한국 스타일이다.
김 목사는 1986년 한국대학생선교회 선교사로 일본에 파송된 뒤 거의 모든 일본 대학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많은 대학에 기독교 조직을 만들어 대학부를 키웠다.
김 목사는 충남대 졸업 후 11년 동안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근무하던 회사에서 일본 유학을 보내준 게 일본 선교의 출발점이 됐다.
김 목사는 충남대 재학 시절 불교서클 회장을 지낼 정도로 불교에 심취해 젊은 날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 코스타-저팬 대표, 히브리문화연구회연합 지도 목사를 맡고 있다.
김 목사의 집회 시간은 16일 오후 7시30분, 17일 오전 6시와 오후 7시, 18일 1∼4부 주일예배다. 장소 1111 N. Brookhurst St., Anaheim. 문의 (714)772-7777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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