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육신의 두 눈 잃었지만 새 생명 얻는 축복 받았죠”

2007-02-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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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두 눈 잃었지만 새 생명 얻는 축복 받았죠”

세계밀알연합회 이재서(왼쪽) 회장은 실명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꼭 잡은 손처럼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인 사랑으로 품은 한점숙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천규 기자>

■세계밀알연합회 이재서 회장

실명 후 자살시도 수차례… 영안에 눈 떠
한국 밀알선교단 만들며 장애인선교 시작
미 유학, 한국인 네번째 시각장애인 박사
“고난은 끝이 아닌 시작이며 창조의 기회”

1965년 전남 승주군 황전면 삽재팔동. 12세 소년 이재서는 형편이 안 돼 중학교를 보내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배우는 게 공부의 전부였다.
어느 순간부터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앞이 흐릿해지는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돌팔이 의사가 준 빨간 가루약을 눈에 넣거나, 용하다는 침술사에게서 침을 맞았다.
제대한 큰 형이 동생을 서울의 한 병원으로 데려갔다. 치료 용도로 붕대를 눈에 감았다 풀었지만 캄캄하기만 했다. 의사는 “앞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겁니다”고 했다. 어릴 때 앓았던 열병이 잠복돼 있다 시신경을 마비시킨 거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이때가 1966년 9월이었다.
절망에 몸서리치던 소년은 목숨을 끊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막걸리와 생명을 맞바꾸려고도 했고, 감나무에 목도 맸다. 그런데 모진 게 명이라고, 죽는 것도 어려웠다.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에 싸였을 때 한 줄기 빛이 내렸다. 형의 권유로 서울맹학교 2학년에 편입했을 때였다.
학교를 찾은 한 목사가 ‘네 가지 눈’에 대해 얘기했다. 사람은 사물을 보는 육안, 지혜를 터득하여 가지는 지안, 마음으로 보는 심안, 종교의 힘으로 영원한 세상을 보는 영안이 있다고 했다. “너희는 비록 육안은 잃었지만 나머지 세 개의 눈은 정상”이라는 결론은 1년간 자살을 시도했던 소년에게 “엄청난 충격이자 환희”였다.
또 다른 빛은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방한 집회 때 비췄다. 눈이 보이지 않던 소년은 진리를 찾아 여러 종교 기관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들렀던 그레이엄 목사 전도 집회에서 예수를 영접했다. 그때 그는 장애인 선교의 비전을 품었다.
그래서 그는 1977년 총신대학에 입학했다. 시각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으려는 학교, 중학교도 못 보낼 정도로 가난했던 가정 형편 등을 딛고 신학생이 됐다. 2년 뒤 ‘장애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목표로 한 ‘한국밀알선교단’을 만들고 초대 단장을 맡았다. 한국에서 장애인 복지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26세 청년 이재서의 힘이 컸다.
장애인 선교를 위해서는 신학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청년은 사회복지학 공부를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다. 갖가지 난관도 많았지만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84년 필라델피아 성서대 사회사업학과 3학년 편입으로 시작된 유학 생활은 1994년 럿거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꼬박 10년간 계속 됐다.
유학 기간에 밀알선교단을 미국에 전파하는 노력도 계속 됐다. 1992년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미주밀알선교단은 지금은 13개 지역으로 퍼졌다.
이 기간 아내(한점숙·48)는 피눈물 나는 헌신으로 남편을 도왔다. 아내는 남편이 공부하는 책을 다 점자로 옮겨줬고, 돈도 벌어야 했다. 남의 집 아이도 돌봤고, 식당에서 일했다. 아내는 앞 못 보는 남편의 눈이었다. 그 덕택에 남편은 한국의 네 번째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됐다.
그렇지만 이 박사는 아내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고향 후배이기는 하지만 나이 차가 나는 데다, 이 박사가 실명한 뒤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내는 “저는 소심한데 남편은 용기가 있어 보여 덜컥 결혼했다”고 말한다.
이 박사는 1996년 총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됐다. 밀알선교단은 1995년 세계밀알연합으로 확대됐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약자 점자도 개발했고, 영한사전을 점자로 출판했다. 장애인 복리 증진 공로로 훈장도 받았다. 지금은 북한 장애인도 돕고 있다.
세계밀알연합회 이재서 회장은 9∼11일 남가주 한인 교회들을 찾아 “두 눈을 잃은 대신 새 생명을 얻은” 자신의 삶을 간증했다. 실명이라는 저주 덕분에 축복을 받은 그의 삶을 나눈 것이다.
이 회장은 “이 세상에서 못 보고 사는 건 잠시 잠깐이지만, 천국에서는 영원히 볼 수 있다”며 “고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아픔이지만 창조를 위한 기회”라고 말했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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