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2-09 (금)
크게 작게
믿음으로 사는 세상

눈만 뜨면 염려와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염려하는 것도 습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살다보면 걱정되는 일이 많고, 억장 무너질 일도 생긴다. 갑자기 장마가 져서 여름 한철 농사가 허사가 되어버리는가 하면, 소중한 집마저 침수 당해 떠내려가기도 한다. 잘 나가던 사업이 여의치 않은 일로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고, 건강한 사람이 어느 날 암 선고를 받기도 한다.
이런 인간이기에 사람에게는 ‘믿는’ 데가 있어야 한다. 믿는 곳이 없으면 바람결 같은 세파에 휩쓸리느라 제 정신 차릴 경황이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들에 의하면, 인간이 걱정하는 것들의 40%는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염려하는 것들의 45%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인간은 쓸모 없는 85%의 걱정으로 심신을 소모하며 사는 꼴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주신다. “너희가 걱정한다고 머리털 하나라도 달라지게 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오늘 괴로움은 오늘 하루로 족하느리라”라고 일깨워 주신다.
인간은 걱정함으로서 그나마 남아있는 에너지조차 고갈시켜 버린 나머지 일어설 기력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셀폰도 일단 배터리가 완전히 소모되어 버리면 재충전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든다. 그 전에 매일 충전시키면 단시간 내에 풀차지가 된다. 이처럼 인간도 걱정, 근심으로 온 몸의 기가 빠져버리기 전에 믿음으로 재충전할 필요가 있다.
알고 보면 염려는 ‘믿음’이 약해질 때 생긴다. 또한 그 반대로 염려하게 되면 믿음이 점점 더 약해져 버린다.
구약의 ‘출애굽기’는 오늘 나 자신의 삶 이야기다. 당신의 백성을 종살이에서 구해내신 하느님은 ‘나 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그 분은 막막한 광야에서 당신 백성과 함께 하시면서 불볕을 막아 주시기 위해 낮에는 구름 기둥이 되어 주시고, 밤에는 추위에 떠는 당신 백성을 위해 불기둥이 되어주신 분이었기에 말이다.
그 하느님께서 오늘도 나의 인생 길에 나와 함께 생활하고 계심을 굳게 믿고 산다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기에 우리와 똑같은 인생 길을 걸었던 ‘시편’ 작가가 “주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죽음의 골짜기를 걷는다 하더라도 나 두렵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던 모양이다.
믿음은 이처럼 두려움을 없애준다. 믿음은 그래서 분명 축복이다.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은 이 축복으로 염려하고 걱정하는 대신,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긍정적인 ‘기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다.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