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극의 땅’에 믿음씨앗 파종

2007-02-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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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서 5년 활동 한태진 선교사

뿌리 깊은 이슬람교‘개종은 죽음’
태권도 가르치며 목숨 건 선교
“고립생활 힘들어도 멈출수 없죠”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사이에 참혹한 유혈 인종 충돌이 벌어졌던‘비극의 땅’ 코소보. 경기도 면적과 비슷한 조그만 땅에서 극소수인 세르비아계 유고 보안군이 알바니아계의 독립을 막기 위해 ‘인종 청소’를 저질렀다. 1998년 2월부터 알바니아인 1,400여명이 죽었고 난민 27만5,000명이 발생했다.
한태진(44) 선교사는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2002년에 첫 발을 디뎠으니 이제 5년이 지났다. 주민의 90%인 알바니아계는 거의 다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 ‘믿음의 황무지’에서 개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안식년을 맞아 풀러선교대학원에서 재충전을 하고 있는 한 선교사는 “너무나 고립된 생활을 해온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코소보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14시간을 간 뒤 터키에서 이틀을 자야 연결편이 있다. 미국서 가려면 영국 런던을 거쳐 하루를 묵고 연결편을 타야 할 정도로 먼 곳이다.
한 선교사는 군대에서 13년을 복무했다. 그 중 5년은 공수부대에서 근무해 낙하산 투하 연습만 40여번 했다. 한 선교사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아내에게 유언장도 쓰는 등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게 코소보로 떠날 때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1,000리 행군도 밥먹듯이 했기에 코소보 생활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건 못 느낀다고.
그러나 아내(송혜신)와 두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교사 월급이 240달러일 정도로 코소보의 경제는 열악하다. 그래서 수돗물도 나오다 말다 한다. 전기도 들어오다 말다 해서 밤에 웅크리고 잘 때도 많다고.
지금은 나토군과 국제 경찰이 코소보에 주둔해 있어서 대량 학살은 일어나지 않지만, 여전히 인종간 증오에 의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현지인들이 상대적으로 잘 산다고 생각하는 탓에 선교사 집에는 도둑이 자주 들기도 한다고.
한 선교사는 코소보에서 태권도를 선교의 무기로 쓰고 있다. 집시 마을을 비롯해 다섯 군데에서 태권도장을 차렸다. 지금껏 100여명이 태권도를 배웠다.
그러나 선교의 열매는 쉽게 맺히지 않고 있다. 무슬림 1명이 세례를 받았고, 가톨릭 신자 한 명이 입교를 한 게 전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코소보 땅을 점령한 이후 600년 가까이 이슬람교가 워낙 깊게 뿌리를 내려 기독교 복음 전파가 쉽지 않은 탓이다.
첫 술에 배부를 리 없기 때문에 서두를 생각은 없다. 그래서 장단기 선교사들을 많이 발굴해 장기 레이스를 펼치는 게 한 선교사의 전략이다. 지금은 12만달러 정도가 드는 3층짜리 선교센터를 구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한 선교사의 이메일은 hantj131@yahoo.com이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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