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2-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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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과 교회

1917년 마르크스 공산 이론으로 제정 러시아를 전복시키고 볼셰비키 공산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본명은 블라다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은 처음부터 노동자 농민들을 위하여 혁명을 주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1870년 원래 보수적이고 경건한 정교회 신도이고 학교 장학관이었던 아버지와 신앙심이 두터운 어머니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관직으로 자식들까지 세습 귀족이 되는 특혜를 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18세 되던 해에 그의 형이 알렉산더 3세 황제의 암살 모의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고 누이들마저 문제를 일으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당시 레닌은 얌전히 공부에 열중했고 성적이 우수하여 많은 상과 메달을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카잔 대학에 다니면서 마땅찮은 대학 규정에 반대하여 작은 시위를 주동했다가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고, 처형당한 테러리스트의 동생이라는 점이 밝혀져 대학으로부터 제적되고 쫓겨났습니다. 학교규정을 약간 반대했다고 해서 가혹한 처벌을 받고 앞길이 막혔다고 생각한 레닌은 그때부터 반정부주의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사회경제 질서를 철저히 파괴하기로 마음먹은 광적인 혁명 신봉자로 변했습니다.
레닌이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에 성공하고 볼셰비키 정권을 장악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체제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만 있었을 뿐, 노동자 농민을 위하여 혁명을 주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농민들의 지지를 업고 1차 혁명으로 기존 체제를 뒤엎고, 이어서 2차 혁명으로 노동자들을 브루조아로 몰아 제거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농토를 얻는다는 희망으로 공산 볼셰비키 혁명에 동조했던 러시아 농민들은 그후 100년 가까운 공산 학정 아래서 농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공산주의가 종식을 고하게 된 원인이 처음부터 노동자 농민을 기만한 데에 도사리고 있었다고 보겠습니다.
반면에 그들이 곧 무너지리라고 보았던 자본주의가 마침내 승리하게 된 것은 산업과 자본의 활동으로 얻어지는 이윤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향상되었습니다. 공산주의와 냉전관계에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활동으로 블루칼러들의 지위를 끌어 올려 대통령이나 노동자나 크게 차이가 없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세계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냉전 체제에 있는 동안 교회는 어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념대로 현대 교회가 진정으로 낮은 곳에 있는 소외된 민중을 위하여 일해 왔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 기독교 교회사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교회가 교회로서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미래 교회의 전망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 이유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이념과는 달리 노동자 농민을 학대했던 공산주의자들의 이중성은 끝내 실패한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관심을 쏟고 노력해야 할 일은 현대의 복잡한 사회체제 속에서 정신적인 공허감을 겪고 있는 현대의 블루칼러, 그리고 이미 만연한 가정문제로 위기와 불행 가운데 있는 가족 문제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교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을 이탈하여 기복신앙으로 교인들을 인도하거나, 교인들의 희생을 강요하여 화려한 교회 건물이나 지어서 외적인 과시나 하려고 한다면,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버림받고, 젊은이들로부터도 외면 당하게 되어, 결국 오래 지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발전해서도 안됩니다.
역사는 냉엄합니다. 역사에는 하나님의 뜻이 내재합니다. 교회는 고통받고 소외된 민중의 편에 같이 서야 합니다. 교회의 소명이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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