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캘리포니아 역사의 시발점 미션 이야기 <2>

2007-02-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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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의 어머니’샌디에고

캘리포니아의 역사가 시작된 샌디에고와 캘리포니아 21개 미션 중 샌디에고 지역에 소재한 3개 미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유서 깊은 휴양도시 샌디에고에 가면 초기 유럽인들이 처음 정착해 살았던 올드타운을 비롯하여 많은 박물관과 가족단위의 테마팍들이 있다. 바다는 인상파 그림과 같이 나른하면서도 태양과 바다가 혼합된 옅은 안개 같은 모습으로 남유럽의 지중해를 닮았다. 샌디에고 내륙으로 들어가면 전원풍의 농장과 작은 마을들이 평화롭게 옹기종기 모여 있다.
샌디에고 시내 한 가운데에 21개 캘리포니아 미션 트레일의 시초가 된 미션 샌디에고(Mission San Diego de Alcala)가 있다. 1769년 7월 스페인 군사령관 포톨라와 가톨릭 로마교회가 선출한 종교 지도자 세라는 두 척의 배를 거느리고 샌디에고 만에 닻을 내린다. 항해도중 잃은 배 한척과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비장한 각오로 첫발을 내디딘다. 세라의 나이 쉰다섯, 병약한 몸으로 한쪽 다리를 절면서 어깨에 소중하게 걸쳐 받든 십자가를 낯선 대지 위에 깊이 박아 세운다. 이곳에서부터 오늘날의 캘리포니아에 최초로 세워진 미션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페인에서 온 사람들이 선택한 이 땅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그들의 전통 방식대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에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이상한 사람들을 경계심과 함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스페인 수도사들은 경계심을 허물고 친해지기 위해 옷가지들과 유리구슬 목걸이 등을 선물로 건넸다.
인디언들은 수도사들의 선물을 호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였으나 앞으로 불어 닥칠 변화의 소용돌이의 시작임을 알지는 못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인디언들과 수도사들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부터 장벽을 이루고 있었으니 모든 일은 험난하기만 했다. 척박한 땅과 부족한 식량, 인디언들과의 불화를 비롯해서 최초의 미션 건립은 최초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려움이 상당히 컸다.
두 집단의 문화적 차이도 갈등의 요인이었다. 인디언들 사이에선 옷을 거의 걸치지 않거나 조금만 걸쳐 입는 것이 세련되고 편한 복장으로 통했다. 그런데 겹겹이 입어 그럴싸하게 옷매무새를 갖춘 것을 미덕으로 알았던 스페인 사람들이 봤을 때 인디언은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거의 매일 씻고 깨끗함을 유지했던 인디언들이 봤을 때 자주 씻지 않아 냄새나는 몸을 긴 옷자락으로 감싸고 다니는 스페인 사람들은 불결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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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샌후안 카피스트라노에 있는 암석교회의 웅장한 모습>


또 다른 문화적 충돌로 이러한 것이 있었다. 인디언들은 전통적으로 물건이나 음식을 함께 나누어 쓰는 공동체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의 물건을 말없이 가져다 쓰는 일이 많았다. 이것을 문화적 차이로 보고 이해하려는 스페인 사람들도 있었으나 도둑질로 여기고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생겨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집단 사이의 긴장은 결국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역사를 만들었다.
최초의 시도로 숱한 어려움을 겪었던 미션 샌디에고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검소하다. 미션의 예배당 또한 어머니의 소박한 옷차림 같은 인상을 주었다. 미션의 안뜰 역시 화려한 장식이나 꾸밈이 없어 그 어느 미션보다도 질박하고 단출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1769년 세운 가주 최초의 미션등 30년간 3개 건립

샌디에고에서 40마일 북쪽 오션사이드 시에 위치한 미션 샌루이스레이(Mission San Luis Rey de Francia)는 길고 높은 미션의 새하얀 벽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이 미션은 ‘미션의 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미션 종탑 위에 금관이라도 쓰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웅장한 미션 규모와 한때 미션이 이루었던 번영을 반영하는 별칭인 것이다.
미션 샌루이스레이는 전체 21개 미션 중 1798년에 18번째로 건립된 후반기의 미션이다. 미션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미션간의 거리는 중요한 요소로 지켜졌는데 이와 같은 원칙에 따라 미션 샌루이스레이는 최초로 생긴 샌디에고 미션과 미션의 보석이라 불리는 미션 샌후안 캐피스트라노의 중간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이리하여 샌디에고에는 모두 3개의 미션이 고른 거리 간격으로 세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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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의 어머니’라 불리는 미션 샌디에고의 정면. 앞의 동상이 캘리포니아 미션을 세운 세라 신부이다>

샌루이스레이 미션 앞에는 재미있는 장소가 남아 있다. 바로 라벤데리아(lavanderia)로 불리는 공동세탁장이다. 미션 앞에는 계곡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넓고 긴 계단을 많이 만들어서 계곡에서 나온 물이 이 계단 양쪽으로 흘러 내려가게 했다. 계단을 따라 흘러 내려간 물은 저지대에 있는 벽돌로 만든 물웅덩이로 모여 공동세탁장의 용모를 갖추게 된다.
이곳에서 인디언 여인네들이 매일 목욕하고 아이들을 씻겼다. 하수는 필터장치가 있는 가는 배수관으로 흐르게 하여 정수되게 한 다음 미션에서 경작하는 채소밭이나 과수원으로 흐르게 하였다. 한번 쓴 물을 정수하여 다시 사용함으로써 귀했던 물을 낭비하지 않고 잘 활용하였던 것이다.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미션의 보석으로 불리는 미션 샌후안 캐피스트라노(Mission San Juan Capistrno)는 21개의 미션 중에 가장 유명한 미션으로 설령 캘리포니아 미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곳이다. 또한 이 미션은 강남 갔다 돌아오는 제비들로 유명하다. 수천마리의 제비 떼가 매년 3월19일이 되면 미션으로 찾아와 지붕아래 둥지를 틀고 산다. 그러다 10월이 되면 6,0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남아메리카로 날아갔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다. 제비들이 돌아오는 날이면 샌후안 캐피스트라노의 작은 마을에는 축제가 열리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제비가 오는 것을 보려고 모여든다.
미션 샌후안 캐피스트라노는 1776년에 7번째로 건립된 미션이다. 미션에는 가장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 있다. 그것은 미션 바로 옆에 있는 암석으로 만든 거대한 교회인데 안타깝게도 지진에 의해 손실되어 지금은 그 일부만이 남아 있다. 암석교회는 캘리포니아 미션 예배당 중에서 가장 장대한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위에서 보았을 때 십자가 모양이었으며 교회 규모는 길이가 60m, 넓이가 13m에 이르렀고 40m 높이의 벽에 교회 종이 달려 있어 아주 멀리서도 교회의 종이 보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높은 건물도 없었으며 마을 인디언들이 살았던 움막집들이 들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때였으니 암석교회의 장대함은 거의 압도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암석교회의 일부를 보고 그 장려함을 상상할 뿐이다.
미션 안에는 미션이 건립된 첫해에 만들어진 ‘세라의 교회’로 명명된 자그마한 예배당이 남아 있다.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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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의 왕’이라 불리는 미션 샌루이스레이의 정면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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