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망상 버리면 깨달음 보인다

2007-01-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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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버리면 깨달음 보인다

고산 큰스님(왼쪽)은 깨달음을 멀리서 찾지 말고 내 몸조차 비었다는 것을 먼저 알라고 했다. 오른쪽은 고산 스님의 시주인 능원 스님.

고산 큰스님 “세상만물이 다 법문…
실체 없는 것 연연말고 공덕 쌓아야”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쌍계사 조실 고산 큰스님이 지난해 12월31일 LA를 찾아 설법을 했다. 일행과 함께 서부 일주 여행을 다녀온 고산 큰스님을 4일 만났다. 큰스님이 전하는‘참 깨달음’을 설법 형식으로 정리했다.

어떻게 해야 부처가 될 수 있나? 일할 때는 일하고, 잠잘 때는 잠자고, 먹을 때는 먹어야 자기도 모르게 성불한다. 내가 깨달아 성불하면 그때부터는 부처님도 내 눈에 걸그친다. 스스로 깨닫는 거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꾸 남에게 기대나.
‘토끼뿔’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름만 있을 뿐, 실체는 없다.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한 생각 깨닫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아등바등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화엄경은 세상만물이 다 법문을 설한다고 가르친다. 무정설법이다. 무정설법을 들을 지 모르니 나 같은 법사를 초청하게 된다. 나무는 나무대로, 굳은 바위는 굳게 선 채로 자기 말을 한다. 일상 생활이 다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런 걸 다 잘 살피면 우리 모두 깨달을 수 있다.
중국 당나라 시대 명문장가였던 소동파는 자신의 박학다식을 자랑하며 다녔다. 자신을 뽐내려고 상총 스님에게 찾아가 법문을 해달라고 청했다. 스님은 “어찌 무정설법은 듣지 못하고 유정설법만 들으려고 하느냐”하고 그를 꾸짖었다. 이해할 수 없어 발길을 돌려 말을 타고 한없이 달리던 소동파는 갑자기 자기가 잘났다는 오만한 생각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오직 텅 빈 마음만 남았다. 그렇게 한참 말을 달리던 소동파는 마침 웅장한 폭포 밑에 이르자 귀가 번쩍 열렸고, “계곡 물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 분명하고, 산의 모습이 바로 부처님의 청정한 법신이 아닌가!”라고 깨달았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항상 깨닫는 사는 삶을 살 수 있나? 다섯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양고기를 달아놓고 개고기라 팔지 마라(거짓 없는 마음) ▲도적을 얻어다가 아들로 삼지 말라 ▲말꼬리에 붙은 파리가 되지 마라(남의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마라) ▲아무 것도 아닌 육신을 치장하지 마라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가 그것이다. 그러면 남자든 여자든 다 장부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또 주의할 게 있다. 깨달았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부처님은 ▲망상을 없애라 ▲망상 없앴다는 생각을 없애라 ▲그 생각을 다시 없애라 ▲망상은 없애고, 없애고, 없앴다는 생각마저 없애라 ▲실 끝만큼이라도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걸 없애라고 말하셨다. 공덕도 쌓은 순간 잊어야 진정한 공덕이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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