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빈 술통 속의 자유’

2007-01-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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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바를 말해 보시오.”
“햇빛을 가리고 있소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빈 술통 속에서 한가로이 해바라기를 즐기던 디오게네스(기원전 5세기께 그리스 철학자)의 선문답입니다.
돌아서는 대왕의 구시렁거림.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텐데.”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알렉산더 외에 어느 누가 되어도 좋소이다.”
대왕의 등 뒤에 꽂힌 디오게네스의 비아냥거림입니다.
그 동안 디오게네스가 되고자 한 사람들은 많았어도 정작, 된 위인은 한 사람도 없음을 익히 아는 그는 급기야, 그의 품바 떼거리들을 도시의 광장으로 비상소집하여, 대명천지 빛나는 태양 아래서 원숭이 떼들처럼, 집단적인 본능적(?) 배설을 실행해 보임으로써, 세상을 향해 무차별 냉소를 쏟아내 버립니다.
꽃다운 나이 33세, 세계를 손아귀에 거머쥔 위대한 대왕이 겨우, 모기 한 마리(말라리아 전염병)에게 패하여 마지막 숨을 몰아쉽니다.
“내가 가면, 두 손을 관 밖으로 내어놓도록 하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희한하게도 대왕이 거하신 같은 날, 전 재산인 물바가지마저도 동료 품바에게 줘 버리고, 90년간이나 개(견유학파)같은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위대한 철학자도, 역시나 개(?)같은 소리를 기필코 남기고 떠납니다.
“박수들 쳐라! 희극은 끝났다.”
“엎어서 묻어라. 어차피 썩으면 아래 위가 없을 테니.”
탐욕이란 채우고 또 채워도 언제나 모자라는 것이기에, 세계 제패라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끝없이 채우고 채우다, 그만 요절해 버린 사람.
무욕의 자유를 위해, 끝없이 버리고 또 버리다, 진정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그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희극을 야무지게 끝내버린 사람.
절 집에서 입에 달고 다니는 잔소리가 있습니다. 채우고 채워야 할 것은 ‘나’를 버린 자리에‘함께’라고.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겠다는 그 마음까지라고. 탐욕과 더불어, 철저히 무욕에 머물고자 하는 그 무서운 집착도 또한, 모두가 죄를 낳으니 죄가 장성한 즉, 탐착으로부터 해방! 그것을 대자유라고 말합니다.
탐착은 ‘나’‘나의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에, 진정‘나’없는 자유로운 자에게는‘함께’만이 함께 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이 걸림 없는 진정한 무애의 대자유 앞에서는, 알렉산더도 디오게네스도 한낱, 찻잔 속의 태풍이요, 한 편의 웃지 못할 희극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이 글의 제목은 수정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빈 술통 속의 작은 자유’로.

박 재 욱 (LA관음사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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