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의 빛’ 찾아 세상 속으로

2007-01-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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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빛’ 찾아 세상 속으로

추영수 목사(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서제니양(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등 시각 장애인들이 한인마라톤클럽 소속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달리고 있다.

■비전 시각장애인센터‘워킹 클래스’

손잡고 함께 걸으면 ‘어둠의 절망’ 저멀리

매주 금요일 그리피스팍서 3년째 실시
서기도 힘들던 회원이 지금은 산 올라

“제인이는 뭐가 제일 보고 싶어?”
“하늘이요.”
“왜?”
“하나님이 어떻게 하늘을 지으셨을까 궁금해서요.”
“(하늘을 올려다보며)그래, 하늘이 정말 파래서 너무 곱구나.”
서제인(14)양과 자원봉사자 이진우씨가 이런 말들을 주고받는다. ‘비전 시각장애인센터’(대표 추영수 목사)가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그리피스팍에서 실시하는 ‘워킹 클래스’에서 트레일을 걸으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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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시각장애인 센터 가족들이 워킹 클래스를 시작하기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제인은 오삭둥이로 태어났다. 산소 과다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때부터 시력을 잃었다. 인큐베이터에서 네 달 반을 누워있을 때 의사들은 “살 가망이 없다” “살아도 뇌성마비나 반신불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제인은 지금 앞만 보지 못할 뿐 기적같이 산다. 어빙 미들스쿨에서는 정신지체아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봉사도 한다. 선생님들은 “매일 행복해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칭찬 일색이다.
오르막이라 제인이 힘든지 이씨의 팔을 꼭 붙든다. 그래도 이날 아니면 바깥에 나와 운동할 수가 없기에 언덕을 오르는 제인이의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워킹 클래스는 신재남(46)씨의 다리도‘무쇠’로 바꿔놓았다.
신씨는 1990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은 후천성 장애인이다. 몸도 오른손만 조금 쓸 수 있는 반신불수다. 브라질로 이민 갔다 물건을 떼러 한국 간 길에 택시가 벼랑 아래로 굴렀다. 6개월간 혼수 상태에 빠졌다 깨어났다.
신씨를 부축하는 추화자 사모는 “첫 워킹 클래스 때는 신씨는 설 힘도 없을 만큼 근육이 전혀 없었다”며 “그날 하루 운동에 신씨가 몸살이 났었는데, 지금은 산에도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신씨도 “하체가 부실했는데 꾸준히 걸은 덕택에 삶이 활기차졌다”며 “요새는 비전센터에 매일 가서 오른손만으로 컴퓨터를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민영(27)씨도 걷기 도움으로 멀미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선천성 시각 장애인이라 바깥 나들이가 잦지 않다 보니 차만 타면 멀미가 심했다고. 그래서 워킹 클래스에 개근하고 있다.
“금요일이 제가 운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날이니 빠질 수 없죠. 금요일에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돼요.”
민영씨는 색깔이 제일 궁금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색을 말할 때면 어떤 것일까 알고 싶다고. 본인 얼굴은 자기 손으로 구석구석 만져보면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워킹 클래스를 이끌고 있는 추 목사는 “운동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생각이 고립되고 이는 정신장애로 이어진다”며 “육체장애가 정신장애로 확대되면 ‘나는 할 수 없어’라며 폐쇄적이 된다”고 말했다.
시각 장애인에게 워킹 클래스는 육체의 운동 시간일 뿐만 아니라 정신의 자유시간을 겸한다. 세상의 공기를 폐 깊숙한 곳까지 넣어서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다.
이날 시각 장애인들은 평소보다 30분 빨리 걷기 운동을 멈췄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각이 좋지 않은 대신 청력이 엄청 발달해, 들리기만 하는 바람 소리에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도 시각 장애인은 걷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그것은 포기를 뜻하고, 절망으로 이어지는 탓이다. 희망이 사라지면 눈이 아니라 마음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빛인 탓이다.

<글 김호성·사진 신효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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