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숙자들이 파파, 마마로 불러요”

2006-12-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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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이 파파, 마마로 불러요”

9년째 밤마다 다운타운 노숙자에게 수프를 끓여 먹이고 있는 김창성-유나 부부. <이승관 기자>

다운타운 노숙자에 수프 제공 9년
김창성 목사-김유나 사모

김창성(61) 목사와 김유나(53) 사모는 LAPD도 건드리지못하는‘거물’이다. LA 다운타운 7가와 샌줄리안에 위치한 노숙자 쉼터인‘발런티어 오브 아메리카’앞은 멈춤 금지구역이다.
그래도 김 목사 부부는 눈도 꿈쩍 않고 하얀 셰비 밴을 세운다. 이들에게 경찰이 티켓을 끊을 생각도 않는다. 이들의 배후(?)에는‘무서운 세력’이 버티고 있어서다.

끔찍한 생활 본 후 선교지로 정해
매일 300명에 먹을것‘밤의 천사’
낡은 밴 멈추자 새 차‘기적’맛봐
“작은 사랑이 모든 사람을 바꾸죠”


9년 세월이 이들 부부를 다운타운의 거물로 키웠다. 오후 9시만 되면 수프를 끓여 노숙자에게 나눠진 공덕이 쌓여서다. 노숙자 중에서도 힘 센 이들이 부부를 든든히 지켜준다.
부부가 만든 수프를 먹는 노숙자는 매일 밤 130명. 수프가 동이 나면 차를 몰고 골목을 다니며 바나나와 물을 나눠주는 데 그 숫자까지 합치면 부부는 300명에게 천사가 된다.
1999년 다운타운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노숙자에게 맞기도 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안경이 깨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부부의 진심을 알게 되자 노숙자는 든든한 비호 세력이 됐다. 그들을‘파파’‘마마’로 부르는 노숙자도 많다고 한다.
부부는 원래 해외 선교사로 나갈 계획이었다. 교육 과정의 하나로 다운타운 노숙자를 찾았는데, 끔찍한 노숙자의 밤을 체험하고 이 곳을 선교지로 바꿨다. 노숙자 틈에 한인도 눈에 띄었던 게 변심에 한몫을 했다.
“다운타운은 낮에는 천국, 밤에는 지옥으로 바뀝니다. 해 떨어지면 노숙자는 고통에 빠집니다. 마약이나 알콜에 중독된 노숙자는 자기 의지대로 얻어먹지도 못해 더 비참한 밤을 맞죠. 그들에게 먹을 거라도 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쁩니까.”
부부는 밤낮을 거꾸로 산다. 오후 6시 오렌지카운티 한인교회(담임목사 신용규)로 나가 수프를 끓이고 도넛과 바나나를 챙긴다. 골목까지 다 돌면 시계는 자정에 가깝다. 하룻밤에 200달러로 노숙자를 먹이는 일에 사명을 갖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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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면옥 식구들이 준비해온 갈비탕을 노숙자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진천규 기자>>

부부는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분들 덕택이라고 공을 돌린다. 원산면옥의 온 가족은 한 달에 한번 갈비탕을 끓여오고, 북창동순두부도 매달 음식을 보내온다. 이태리양복점, 웨이브 성형 등은 금전으로 돕고 있다고 한다. 바이올라 신학대 학생들은 찬양으로 노숙자를 위로하고 있다.
김 사모는“이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저희만으로는 그 세월을 못 버텼을 것”이라며“헌 옷이나 담요는 노숙자에게 너무나 반가운 선물이므로, 한인들이 많이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기적을 맛봤다. 낡은 차가 꿈쩍도 안 해 수프를 갖고 갈 수도 없는 처지에 처했었다. 금식기도에 들어간 지 사흘째, 그 전에 얼굴을 딱 세 번 본 가드닝 회사 사장이 새 밴을 갖고 왔다.
노숙자와 함께 한 시간이 부부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 있다.‘조그만 사랑이면 모든 사람이 변할 수 있다’이다.
“한인사회가 성경에서 익힌 말씀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곳이 다운타운입니다. 이웃사랑 실천이 별건가요. 노숙자에게 물 한 병 안겨주면 되죠.”
“저희가 한 건 아무 것도 없을 뿐, 저희가 오히려 더 배운다”는‘수프맨 부부’를 돕고 싶다면 (714)514-9871로 연락하면 된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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