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목자 칼럼 ‘두 교회 이야기’

2006-12-15 (금)
크게 작게
어떤 사람이 먼저 천국에 갔다. 한 무리는 입과 귀만 있었고, 또 한 무리는 입과 눈만 있었다. 여기에서 오늘 두 교회인 설교 교회와 미사 교회를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생각게 한 이야기다.
필자가 한국에 있을 때 가끔 기도하러 강원도 태백산에 있는 예수원을 찾고는 했었다. 예수원(Jesus Abbey)은 지금 낙원에 가있을 대천덕(Archer Torrey)신부님이 기도하는 집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는 황지라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는데, 여기서 북쪽으로 한강이 시작되어 흘러가고 있고 남쪽으로 낙동강이 시작되어 흘러간다.
이 강들은 조금만 가면 탄광 석탄 물에 까맣게 물들고, 더 가면 공장 폐수와 농약에 오염되고, 심지어 인간 오물이 혼합되어 큰 강을 이루었을 때는 물고기가 제대로 자랄 수 없어 기형 물고기가 산다. 이때 원천에서 명절 같은 큰 날에 “누구든지 내게 와서 마셔라 그러면 그 배에서 생수가 흐르리라”(요 7:37-39)고 외치며 부르고 있었다. 이 생수는 성령으로 결국 대 신부님이 한국의 성령 충만을 위해 성령운동의 큰 기둥이 되었다.
성서에 이런 말씀이 또 나온다. 엠마오의 두 교훈(루가 24:13-35)이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엠마오의 도상에서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에 뜨거워지는” 믿음을 주셨고, “떡을 때심으로 보게 되는” 성찬 예배를 주신 데서, 오늘의 두 교회를 찾아볼 수 있다.
이제 결론에서 오늘의 두 교회가 원천에서 다시 만나는 초대교회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에서 시작될 때는 성전 예배에서 짐승의 피를 법궤에 바르고, 제단에서 태워서 향기로운 냄새(레 1:19)로 야훼 하나님께 예배드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개혁하셔서(히 9:10), 우리에게 주신 자그마한 떡과 잔이 세상의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의 피와 살로 하여 예배하게 하였다.
이 초대 교회는 로마의 박해에서 미신행위라 불렸지만, 그래서 성만찬 상에서 이루어진 신비를 잘 모르는 초대 교회의 새 신자에게 ‘나가 주시오’ 하면서 미사(Missa)가 시작됐다. 차차 이 미사는 형식적으로 흘렀고, 중세에는 성찬의 이해에서 ‘말씀을 풀어주고 적용하는’ 설교가 강화됐다.
그러나 말북 회의에서 타협하던 개혁가들은 주일 예배 때마다 성찬을 할 것이냐 하는 논쟁으로 쪼개졌다. 그래서 예언을 위하여 쯔빙글리와 칼빈은 설교만 고집하고, 루터는 성찬과 함께 하는 설교를 주장하다 갈라졌다. 오늘의 설교 교회와 미사 교회가 여기서 연유한다.
여기서 엠마오의 두 교훈과 산골짜기의 성자에게서, 말씀과 성찬이 있는 교회로의 합일점을 찾아보려는 소망으로 이 칼럼을 쓴다.

김 경 덕 신부 <성공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