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사진 이야기’

2006-12-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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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소중한 흑백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사진을 좋아하시던 선생님이 커다란(?) 사진기로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그것을 크게 확대하여 저희 집에 걸어놓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예쁜 액자로 다시 틀을 만들어 걸었습니다. 서울시내 남자 고등학교 대항 100미터 경기 결승점을 제일 앞서서 테입을 끊는 장면입니다.
그 사진을 보면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계속해서 육상을 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마음입니다. 또 하나는 30년 전의 감격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 감격과 함께 제 옆에 뛰던 친구를 기억하게 됩니다. 출전하는 선수들은 3년간 시합을 했기에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저의 바로 옆 라인에서 뛰는 친구가 저와 악수하며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너를 이긴다. 연습 많이 했거든!’
그날의 100미터 경기는 옆에 있던 친구가 스타트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앞서 뛰었지만 결승 테입은 제가 먼저 끊고 말았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연습이 부족한 상태에서 출전한 터라 대회가 끝나고 다리 근육이 아파서 한동안 쩔쩔맸습니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칙을 생각해 봅니다. “누가 잘하나!”의 법칙입니다. 이 세상은 그 결승 테입을 누가 먼저 끊느냐에 따라 상을 줍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국에선 아이들에겐 주말 장원, 월말 장원, 연말 장원을 뽑는 노래자랑이 인기였습니다. 물론, 어른들에겐 아직도 계속되는 송해의 ‘전국 노래자랑’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미국에선 지난 몇 년 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Fox TV의 ‘American Idol’이 바로 ‘전국 노래자랑’의 미국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식축구의 전설적인 스타인 에밋 스미스(Emmitt Smith)가 우승해서 화제를 뿌렸던 ‘스타와 함께 춤을’ (Dancing with the stars)이라는 ABC 방송의 프로도 ‘누가 잘하나!’의 전형적인 모델입니다.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사람,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 자기의 몫을 훌륭히 해내는 사람에 대한 인정과 감사가 부족한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주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칭찬하는 한 분이 계십니다.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 만큼은 결과를 보시지 않고 과정을 보십니다. 주어진 것으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를 살피십니다. 제 친구는 그 경기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저에게 주어졌던 이 한 해를 돌아봅니다. 이 한 해를 평가할 때 어떤 보이는 커다란 결과를 얼마나 이룩하였는가 보다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주어진 것으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를 살피려 합니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이러한 마음으로 다시 새롭게 뛰기 위해 준비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했던 30년 전 사진 속 그 친구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고 태 형 목사 (선한목자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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