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빈 하늘 빈 차’

2006-1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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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쪽 하늘에 노을이 진다.
나성의 능선을 따라 채우며 오래 된 동정처럼 가무스름하게 때가 묻은 하늘 너머로 떨어지는 해가 마지막 검붉은 자락을 거두어 들이면, 속절없이 대지에 퍼져 누운 채 땅거미를 불러들인 도회는 무병을 앓는 거대한 신딸처럼 터럭마다 마디마다 바스락거리며 신열의 반딧불을 반짝이기 시작한다.
찰나에 돋아난 밤버섯 같이 도심에 솟아 오른 마천루의 군락은 층층이 불빛을 비치며 허공에 걸렸는데, 그 발끝을 돌아 나온 아홉 이랑 드넓은 한길이 한인촌을 저만치 두고서는 해 떨어진 쪽으로 곧장 달려간다. 큰 핏줄을 갈라붙인 해부학의 한 도면인가, 그 이랑들을 가득 채우며 눈부시게 다가오고 붉게 이끌려 가는 두 가닥 불빛의 긴 흐름은 어둠 속에서 도도한 강물을 이룬다.
그 강물에 떠밀려 하나의 피톨이 된 채 가다가 서다가 가다가 서다가, 무심코 핸들에 손을 포개고 턱을 비비는데 한 나절 자란 까칠한 수염이 손등을 문지르며 나를 일깨운다.
이 봐, 지금 저 불빛에 이끌려 가는 이 사람은 아침에 이 자리에 앉았던 그 사람이 아니라고. 부엉이 눈같이 동그란 이 계기판들도 좀 보라고, 기름은 줄었고 주행거리도 얼마만치 늘었지 않나. 절로 굴러가는 이 수레도 아침의 그 수레가 아니라네.
이 굴러가는 수레를 보통은 자동차라고 하지. 그러나 지금은 저 붉은 불빛의 꽁무니를 따라 가는 밝은 두 눈이라고도 할 수 있지. 돌이켜 보니 하루의 곤혹과 모멸을 떨치려 찾아든 나만의 암자이기도 하고, 속세의 안락에 잠겨 일탈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가두어 두는 감방이기도 하지. 세수의 목표 달성에 몸 달은 교통 경관에게는 달아나기 쉬운 금고이기도 하다.
이렇듯 밝은 두 눈-암자-감방-금고-사냥감-선물상자-상여라고 길게 엮어 부를 수도 있는 이 물건은,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만 그 존재가 비쳐지고, 다른 존재에 기대어야만 자체의 존재가 어렴풋이 더듬어지기에, 실체가 없이 속이 텅 비었으며 한 순간도 고정돼 있지 않은 것이지. 그저 편의상 자동차라고 부를 뿐인데, 우린 그만 그 거짓 이름에 얽매여 내 차가 좋으니 네 차가 비싸니 분별하고 집착하며 그 독자성과 고유성을 믿어 의심치 않지.
그러니 이 조그만 수레 안에는 모든 것이 가득 들었지. 밝은 두 눈에서부터 구겨진 상여에 이르기까지, 턱이 말끔했던 아침의 그 사람에서부터 고향 쪽 하늘을 바라보는 황혼의 텁수룩한 사나이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 들락날락 서로 기대니 이들 사이에 어떠한 막힘이나 거리낌도 있을 수 없지.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어 테두리도 없이 너와 내가 한 몸이 되는 것이지.
저녁놀이 스러진 텅 빈 저 하늘 너머, 지금쯤 먼동이 트고 있을 그곳에까지, 마디마디 아픔과 기쁨을 앓고 있을 너와 나는 그래서 우리 모두 한 몸이 되는 것이지.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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