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자랑스런 주변인(Marginality)’

2006-12-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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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호루라기 ‘자랑스런 주변인(Marginality)’

김 병 호 (횃불교회 목사)

위암과 직장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살던 40대의 윤모씨를 심방했다. 한국에 가족을 남겨둔 채 미국서 불법 체류자로 어렵게 살던 윤씨가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미국 땅에 살고 있는 나그네로서 언제나 이런 자기의 정체성(Identity)을 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질문이 있어야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조차 하지 않으면서 돈벌기에 급급하다면 지극히 단세포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비하하는 행위가 아닐까?
이민자, 혹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고민이 있다면 ‘나와 우리는 누구인가’이다. 특히 1.5세나 2세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첫째로, 나는 한국 사람인가? 피부색, 언어, 습관, 문화 등을 볼 때 틀림없이 나는 한국 사람이다.
나는 미국사람인가? 그렇다. 미국에서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고 살기 때문에 미국사람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한국사람이기도 하고 미국사람이기도 하다.
둘째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한국사람도 아니고 미국사람도 아니다. 이제 한국을 떠나온 지 꽤 오래 되었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산다 해도 미국에서보다 훨씬 더 심각한 거절과 차이의 장벽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동안 너무나 미국화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사람이기도 하고 미국사람이기도 하며, 동시에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바로 이 묘한 정체성을 가진 것이 우리 이민자다. 즉 주변인(Margiral person)이다. 이것은 우리를 비하시키기 위함이 아닌 사실이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이 그런 모습이었고, 우리의 메시야인 예수님도 그런 모습이셨다. 이들은 우리처럼 이민자요 나그네였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라. 언제나 주변인이셨다. 나그네처럼 사셨다. 기득권과 중심세력으로부터는 언제나 거절과 고통을 받으시면서 중심보다는 주변에 머물면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병들어 신음하는 자들을 치료해 주시고, 희망 없이 사는 민중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면서 그 분은 어느 한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도 없고 거처도 없이 외국인이요, 나그네처럼 사셨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어느 날 그에게 이민을 명령하셨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이민을 갔었다.
인생은 굳이 성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본질적으로 나그네의 삶이요 이민자의 삶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것 자체가 둥지를 틀고 영원히 뿌리내리는 도성이 아니라, 톨스토이의 말처럼 “다만 이곳을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것을 항상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낯설고 두꺼운 문화의 장벽 속에 백인들처럼 중심이 아닌 주변인으로 사는 것 자체가 열등한 삶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이고 본질적인 삶이기에 기죽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동시에 조금만 이루어도 마치 모든 것을 이룰 것처럼 허영심과 꿈틀대는 교만으로 허세에 젖어 자신의 삶을 동물적인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우리의 본성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우리를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12월이다.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친히 강생하신 크리스마스 시즌에, 오늘도 이 땅의 나그네요 주변인으로서, 꿈을 꾸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눈물과 수고의 땀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우리의 자랑스런 코리언에게 뜨거운 축복의 박수를 보낸다.

김 병 호 (횃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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